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정의 [유레카]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스코틀랜드 출신 도덕철학자이자 경제사상가다. 꼭 250년 전인 1776년 3월,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천에 관한 고찰’(국부론)을 출간했다. 근대 부르주아 경제학의 출발점이 된 고전이다. 앞서 1759년에는 ‘도덕감정론’을 내놨다. 둘 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한 도덕철학 강의를 토대로 쓰였다.

당시는 유럽의 절대왕정과 세습신분제가 붕괴하던 시기였다. 프랑스에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시민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었다. 국부론이 나온 바로 그해 영국 식민지이던 북아메리카 동부 13개 주는 독립선언으로 미합중국 건국을 선포했다.

도덕철학 강의는 자연신학, 윤리학, 법학·정치학, 정치경제학 등 4개 분야였다. 자연신학(이신론)은 자연과 인간 사회가 신이 부여한 질서와 규칙으로 움직이며 이는 인간 이성으로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뼈대다. 윤리학에서 스미스는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봤다. 법학과 정치학에서는 사회 질서의 기본 원리가 법과 제도를 통해 어떻게 유지되는지 살폈다. 정치경제학은 노동·시장·무역·세금·재정·국방 분야 등의 공공정책을 다뤘다. 이 중 윤리학 강의가 ‘도덕감정론’으로, 정치경제학 강의는 ‘국부론’으로 출간됐다.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스코틀랜드 커콜디의 ‘애덤 스미스 예술극장’에 있는 애덤 스미스 흉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흔히 국부론은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이 시장 최적화와 성공을 보증한다는 ‘시장 만능주의’의 경전으로 곡해되곤 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인간의 욕망이 선하다거나 국가의 개입이 항상 나쁘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은 국부론에 딱 한번, 스미스의 저작들을 통틀어 세번 나온다.

맨 먼저는 ‘천문학의 역사’(1750년대 초)에서 천체와 물질의 운동을 “주피터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주관한다고 썼다. 두번째는 ‘도덕감정론’이다. “지주들은 천성의 이기심과 탐욕에도 불구하고 (…)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토지가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분배되었을 경우와 같은 형태로 생활필수품의 분배를 하게 된다.” 국부론의 대목은 이렇다. “(각 개인이)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지휘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추구하지만 개인의 사익 추구로 타인이 불행을 느끼게 되면 이기심을 억제한다고 봤다. 그 과정에서 ‘중립적 제3자’의 동감을 얻는 절제가 사회적 윤리로 발전한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는 스미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은 “믿고 있지만 증명할 수 없는 자연적 질서 또는 신의 섭리”이자 “절대 왕정을 타도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 슬로건이었다”고 해석했다.(‘국부론을 읽는 시간’, 김수행 지음, 박도영 정리, 해냄, 2026)

올해 1분기에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연결 기준, 57조2328억원)을 기록한 삼성전자가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대를 크게 웃돈 ‘깜짝 실적’은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었다. 상이한 경제 주체들의 실적 기여분을 계산하는 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도 아니다. 다만,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배수진이 노동자 생존권이나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노동자 연대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중립적 제3자의 공감을 강조했던 애덤 스미스라면 어떻게 볼까?

조일준 텍스트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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