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청년 믿고 밀어주지 못한 현실…그래도 힘내야죠

지난달 29일 충남 태안군 이곡서점에서 만난 김은지 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 서점 책장에는 소원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 천리포수목원 교육생이 기록한 나무이야기 등이 전시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살리기’ 공약이 쏟아진다. 변방에 대한 ‘반짝’ 관심이다. 지방소멸은 왜곡된 표현이다. 지역이 잘못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정치가 방치한 지역불균형 탓이다. 여기, 2026년 ‘전환’을 맞이한 지역이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이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해, 산업 재편과 인구감소 위기에 처했다. 기자 셋이 태안을 오가며 201명을 인터뷰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태안이지만, 소외된 지역 모두의 이야기다.

“직접 마을의 ‘거점’을 만들어보자, 이 빈 곳에 젊은 사람들이 오가면 분명 활력이 생길 거다, 그렇게 생각한 거죠.”

임신 중이라 배가 볼록한데도 활기차게 서점 안을 돌아다니던 김은지(38)가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인접한 원북면 이곡2리 이장의 딸인 그는, 일자리가 없는 태안에 일자리를 직접 만들었다. 2023년 읍내에 태안 유일의 독립서점이자 카페인 ‘이곡서점’을 차렸다.

이곡서점에 들어오면 태안이 보인다. 벽에는 태안 씨름대회, 작가 초청 강연 등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작은 학교’ 아이들의 문집도 전시 중이다. 소원초등학교 ‘어린 작가’들이 쓴 동시집, 천리포수목원 교육생이 기록한 ‘나무이야기’는 서점에서 직접 펴낸 책들이다. 고향을 기록하는 게 은지의 꿈이다. 화력발전소 근처에 사는 할머니들의 ‘암 지도’도 언젠가는 너무 무겁지 않은 느낌의 책으로 펴내고 싶다.

은지는 강원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환경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태안이야말로 내가 고민하는 에너지 전환, 지역소멸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가 폐교됐는데, 그곳에 서점을 차리면 젊은 사람들이 들를 것 같았다. 어르신을 위한 운동시설, 농산물 판매 전시장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혔다. 학교의 소유권을 가진 마을 한곳이 반대했다. 어쩔 수 없이 읍내에 서점을 열었다. 창고로 방치된 초등학교를 볼 때면 씁쓸하다.

태안에는 이처럼 스스로 일자리를 일구는 청년들도 있다. 사업자로 등록한 청년은 1871명(2025 태안군 청년 통계 보고서)이다. 만 18~45살 청년 8명 중 1명(12.5%)꼴로 창업을 한 셈이다. 창업을 원하는 이들은 태안군이 운영하는 청년창업비즈니스센터로 모인다. 지원자로 선발되면 창업 초기 최대 2천만원, 읍내 공용 사무 공간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난달 30일 충남 태안군 한 화훼농장에서 이승묵씨가 꽃의 생육 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하지만 은지처럼 ‘꿈’이 큰 청년들은 아쉽기만 하다. ‘청년이 많아져야 지역이 산다’고 하면서도, 지자체가 자신들처럼 절박하지 않은 것 같아서다. 태안 토박이인 청년 농업인 이승묵(33)은 꽃을 키워 수도권에 판매한다. 1천평 규모의 평천리 화훼농장에는 꽃을 키우는 환경을 정밀하게 조정해주는 사물인터넷기술(IOT) 장비를 갖추고 있다. 농촌도 이제 ‘장비 싸움’이다. 그런데 창업비즈니스센터에선 “장비 임차만 가능하고 구매비는 지원 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 애초 지원금 항목은 홍보비, 컨설팅비, 기계장치 임차비 등으로만 한정돼 있다. 창업자들에게 우선순위인 사무실 임차료 등은 지원이 안 된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태안에 정착해 마음심리상담발달센터를 창업한 유정민(45)은 지난 4월 창업비즈니스센터 사무실 책상에 있던 짐을 뺐다. 창업 이후 4년으로 정해져 있는 지원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읍내에 센터 사무실을 따로 열긴 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아동 상담실을 운영해야 해서 독립된 사무 공간이 없다. 유정민은 취약계층 아동 정서지원 사업, 친족 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 등을 해왔다. “일주일 내내 텅 비어 있는 센터 사무실을 볼 때마다 착잡해요. 딱 5년까지만 쓰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소원면에서 새우양식업을 하는 윤주한(29)도 ‘좌절’을 겪었다. 수도권에서 자란 그는 2021년 아버지와 함께 태안에 왔다. 마침 친인척이 새우양식업을 같이 해보자고 권했다. 새우양식업이 발달한 베트남에 가서 기술을 배워 오는 등 “인생을 걸었”다. 하지만 창업 이듬해 ‘청년 어촌 정착 지원사업’에 공모했다가 탈락했다. 매달 100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었다. 태안에서 어촌계는 돈을 많이 버는 ‘알짜’ 사업이라 진입 문턱이 높다. 안면도에서 어업을 하는 편도관(58)은 “양식장 하나에 몇억씩 하는데 결국 자식에게 물려준다”며 “외지 청년이 들어와서 양식장을 만들려면 어촌계와의 융합도 중요하니, 청년을 적극 받아들이는 어촌계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에 새로 유입된 청년들에게는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지난 3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청년의 지역 이동과 정착’)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한 만 19~34살 청년 3명 중 1명(34.9%)꼴로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비수도권 지역에서 체류한 기간은 평균 1.6년에 그쳤다. 수도권에 살다가 아이 셋, 아내와 함께 2022년 태안에 이주해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홍세환(41)은 “워케이션 등 20대 젊은이들이 일시적인 여행으로 지역에 들르게 하는 정책보다, 정말 지역에서 살아갈 청년을 위한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안(충남)=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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