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식 | 알파랩부장
논픽션의 대가라 불리는 존 맥피의 글쓰기에 대한 책 ‘네번째 원고’ 마지막 장은 ‘생략’이다. 맥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생략 이론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독자가 가을 풍경의 전모를 자기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려면 작가는, 옥수수 노적가리, 꿩, 이른 서리와 같은, 몇몇 단어와 이미지만 전달하면 된다. 창의적인 작가는 장과 장 사이, 절과 절 사이에 여백을 남긴다. 창의적인 독자는 이 여백에 나타난, 적히지 않은 생각을 침묵 속에서 명료화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이아이)은 여백이 없다. 헤밍웨이 생략 이론의 핵심 문장,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 있는 이유는 수면 위로 8분의 1만 드러났기 때문이다’에 대해 ‘왜 하필 8분의 1이냐’고 물어봤다. 에이아이 클로드는 얼음과 바닷물의 밀도를 제시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냥 한번 상상해보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이런 즉문즉답은 오히려 독해를 방해한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바로 답을 내놓는 관계에 여백이 있을 틈이 없다. 인공지능은 매 순간 수면 위로 8분의 8을 드러내려 애쓴다.
읽기는 책의 여백에 쓸 말이 자꾸 떠오를 때 즐겁다. 박숙자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는 한겨레 연재 칼럼 ‘새벽 5시 에이아이 그리고 당신’에서 읽기를 밭고랑을 걷는 행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읽기는 미로를 헤매는 탐험처럼 언급되기도 하지만 봄 밭의 고랑에서처럼 한걸음씩 움직이며 언어의 결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라가다가 읽기는 읽기 이상의 행위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들을 임의로 바꾸지 않고, 그것들이 놓인 자리와 연결의 방식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세계, 서로 다른 사유의 층위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일입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박 교수는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의미의 차이를 매끄럽게 지우진 않았는지 경계하며, ‘텍스트의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의 ‘한 문장’을 제대로 기억하고 인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말하기’에도 여백이 있다. 김애란 작가가 지난달 15일 문화방송(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말한 망설임 같은 것이다. “인간한텐 있고 에이아이(AI)한텐 없는 것이 망설임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있다. 그리고 그 주저 안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 어느 때는 유려하고 빠른 에이아이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다.” 손석희 앵커가 2019년 4월4일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서 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다 20초간 침묵한 일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사고처럼 보일 수 있는데 어떤 진실과 인간이 서 있는 모습을 우리가 다 봤다고 생각한다. 그때 역시 망설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말과 말 사이에 있는 숨, 표정, 몸짓, 소리, 망설임도, 그 망설임을 읽는 일도 인간의 몫이다.
행간을 읽고 침묵의 의미를 헤아리는 일은 앞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난 3월 ‘경험수집가의 시대’를 펴낸 송수진 교수는 제트(Z)세대(1997~2011년생)가 감정, 시간, 관심의 낭비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진단한다. 최대한 아껴서 더 가치 있는 경험에 밀도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정과 시간 낭비를 싫어하지만 콘텐츠는 ‘덕질’한다는 게 송 교수 설명이다. 같은 영화를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차례(n차) 관람한다. 이런 문화는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고, 미세한 감정을 포착하고, 서로의 해석을 나누며 경험을 덧입히는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자동판매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답을 내놓는 시대에도 콘텐츠에서 의미를 찾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경험은 돈을 여러번 지불할 만큼 즐겁다는 뜻일까.
생략과 침묵조차 제대로 읽고 싶어지는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까. 헤밍웨이는 충분히 잘 알고 쓸 때 생략도 빛난다고 말한다. ‘작가가 자신이 쓰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아는 걸 생략해도 좋다.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쓰고 있다면 독자는 작가가 (생략하지 않고) 직접 썼을 때만큼이나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작가가 그냥 잘 몰라서 생략한 거라면? ‘글에 구멍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