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22일 5000, 2월25일 6000…. 파죽지세로 오르던 코스피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라는 암초를 만나 3월31일 5000선까지 주저앉았다. 그 뒤 불과 한 달여 동안 2000포인트 가까이 급등해 6일 7000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례적인 상승장을 끌어간 것은 에이아이(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들의 호실적이었다. ‘반도체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지난달 외국인 수급이 돌아오며 코스피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500조원으로 몸집을 불린 퇴직연금을 재료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펼쳐진 폭등장 이면엔, 대형주를 제외한 다수의 종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쏠림 현상도 심해졌다.
이번 상승장의 가장 큰 축은 에이아이(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반도체 기업의 실적 랠리다. 지난달 7일 삼성전자는 시장 예상(4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57조2천억원)을 공개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역시 지난달 23일 올해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37조6천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히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중동 사태로 인한 국제 유가 폭등으로 불어닥친 경기 하방 압력을 천문학적 실적이 거뜬히 상쇄한 셈이다. 인공지능발 ‘반도체 랠리’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증시를 이끌고 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연초 대비 55% 급등하며 엠7(미국 증시를 주도하는 7개 빅테크 기업) 및 나스닥 지수 상승률을 압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2∼3월 순매도로 일관했던 외국인 수급이 돌아온 것도 최근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외국인은 지난해 숨가쁘게 달려온 주가 상승에 대한 차익 실현과 중동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 등 영향으로 두달간 57조를 팔아치웠다. 3월 한달 순매도만 35조원에 달했다. 그러다 종전 기대감이 고조된 지난달부터 순매수(월간 1조1천억원)로 돌아섰고, 5월 들어선 순매수 폭을 키우고 있다. 5월 첫 거래일인 지난 4일 2조9천억원가량, 이날도 3조1천억원가량 쓸어담았다. 김동원 케이비(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전 세계에서 수익성(12개월 선행 자기자본이익률·ROE 22%) 대비 가장 낮은 밸류에이션(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 1.4배)을 기록하고 있는 코스피에 관심이 증폭된 것”이라 분석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장지수펀드의 대규모 수급이 증시를 견고하게 받쳐주며 상승세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상장지수펀드는 지난 4일 기준 440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코스콤 이티에프(ETF) 체크 수치를 보면, 지난달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된 상장지수펀드는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선 이러한 혼합형 상장지수펀드가 흥행한 배경으로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를 퇴직연금 계좌(확정기여형·개인형 IRP)에서도 투자하고 싶은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500조원을 돌파했는데 이 중에서 증시로의 이동을 점칠 수 있는 확정기여형·개인형 IRP 규모는 127조원가량으로 지난해 1분기(67조원)의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다만 반도체 대형주가 상승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쏠림 부담은 더욱 커졌다. 실제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상승한 종목은 202개지만, 하락한 종목은 679개로 세배가 넘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와 증권 관련 종목이 12% 가까이 올랐고, 전자·아이티(IT) 등이 상승을 이끌었다. 코스피 상승세와 달리 코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0.29% 떨어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가총액 1∼3위가 강세를 주도하며 대형주 중심의 쏠림 현상이 심화했다”고 평가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