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은 때로 기억보다 먼저 우리를 데려간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시간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각의 자리로 끌고 간다. 김두례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무엇을 ‘본다’기보다 먼저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익숙한 형상은 없다. 대신 흩어지고, 부딪히고, 때로는 스며드는 색들이 있다. 사물을 닮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된 무엇을 건드린다. 기억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희미하고, 감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것일 게다. 어쩌면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감각일지도 모른다.
김두례 작가의 개인전 ‘나는 그냥 그린다’가 24일부터 5월 29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색채와 기억, 그리고 감각의 층위를 탐색해온 작가의 회화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의 온기, 손끝으로 만지던 천의 결, 이유 없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붉은 기운. 그런 것들은 말로 설명되기 전에 이미 지나가버린다. 김두례는 그 지나간 것들을 붙잡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색으로 다시 흘려보낸다.

화면 위에서 색은 머무르지 않는다. 사각의 조각들은 서로를 밀어내듯 흩어지고, 흰 바탕은 그것들을 붙잡지 못한 채 가만히 갈라진다. 어디에도 중심은 없다. 시선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돈다. 마치 우리가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처럼 분명히 하나의 장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져버린 뒤다.

그러다 문득, 한 화면에서 붉은 색이 우리를 멈춰 세운다. 거칠게 칠해진 붉음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에 가깝다. 가까이 가면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보인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이 지나간 자국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 지나가며 남긴 열기처럼 느껴진다. 그 위를 가르는 차가운 색의 선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긴장을 만든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리. 그 안에서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깊은 파랑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곳에서는 색들이 더 이상 충돌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스치고, 스며들고, 조금씩 사라진다. 경계는 흐려지고, 형태는 풀린다. 마치 밤의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무엇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천천히 가라앉는 감각만이 남는다.

이처럼 세 계열의 작업은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한다. 바로 흩어지고, 타오르고, 가라앉는다. 확장되고 응축되고 심연으로 침잠하는 감각이디. 그러나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한다. 김두례의 회화에서 색은 더 이상 사물을 설명하지 않는다. 색은 기억을 대신하고, 감정을 드러내며, 존재의 상태를 기록한다. 그가 “그냥 그린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감각으로 돌아가려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그림은 그렇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형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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