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걸맞는 규제개혁[MT시평/최준영]

모든 것은 수명이 있다. 제도 역시 그렇다. 수명이 다한 제도들은 폐지해야 하고,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제도들로 대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게 잘 이루어지면 사회는 활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는다. 2026년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일까.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부작용이 커지던 1990년대에 수많은 제도들이 등장했다. 각 분야별로 다른 특성이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전까지 의사결정권자의 판단에 맡겨놓던 것을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단계별로 나누어 확인하고 점검하도록 한 것이다. 보다 많은 전문가들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면 더 폭넓은 의견이 반영되고 사회적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였다. 이러한 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문 기관들과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런 전제는 얼마나 달성되었을까.

각종 평가와 분석을 위한 기법이 필요했지만 국내 사정에 적합한 기법들은 드물었다. 이를 위해 해외 제도들을 기초로 국내 상황을 반영한 연구들이 급속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을 토대로 기법들이 만들어졌다. 어설펐던 초반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런 기법들은 정착되었다. 문제는 일단 정착된 기법들이 사회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 소득은 몇 배 늘었지만 여전히 각종 분석에서는 몇 백원만 비용이 올라도 이용률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제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한때 희귀종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많은 동·식물들이 여전히 보호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위원회로 대표되는 분산된 의사결정체계가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수많은 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실상 그 위원회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도출한 경우는 드물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자문위원으로 생각한다. 기획단, 실무위원회 등 다양한 이름의 산하 조직에서 만들어 온 결과들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의례적인 표결을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래 위원회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위원들이 의사결정을 위한 자료를 직접 찾고, 토론하고, 결론에 해당하는 보고서를 직접 작성하면서 합의에 이르러야 권위와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제도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무엇을 위해 그런 복잡성을 감내해야 하는지 되묻는 경우는 별로 없다. 30년 전에는 옳고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런가라는 질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규제개혁이라는 깃발아래 가끔씩 몇 개의 제도들을 바꾸지만 조만간 그만큼의 제도들이 다시 만들어진다. 문제가 생기면 제도와 시스템을 탓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이제 본능적인 반사작용이 되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의 능력만으로도 대부분의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인공지능으로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제도들을 바꾸고 없앨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AI 강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조회 15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