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살 곳이 못 돼!” [서울 말고]

지난 10월23일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인특별위원회가 주관한 ‘성평등 정책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국회 포럼’ 모습. 여성농어업인특별위원회 제공

양미 | 작가·‘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막차를 타기 위해 읍내 버스터미널에 왔다. 아직 막차가 출발할 시간은 한시간이 남아 있었다. 터미널로 향하는 걸음은 몇번이나 갈팡질팡했다. 마냥 터미널에 앉아 있기 싫은 마음과 근처 카페나 마트에라도 들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터미널로 향하는 발걸음을 단단하게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그는 난해한 버스시간표를 붙들고 힘겨워하고 있었다. 옆에서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도 버스시간표를 해석(!)하긴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행선지를 확인하고 버스시간표를 설명한 이후 벌어질 일이 예측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결국 나는 할머니를 돕기로 한다.

나와 행선지가 같고 같은 버스를 타면 된다는 안심과 기다림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할머니는 나에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교회나 성당에 다니면 좋겠네.” “결혼은 했고?” “혼자 살아?” “아이는? 아이는 있어야지!” “어디서 왔어?” 말들 사이에 이어지는 자식 자랑과 딸 지인에 대한 험담까지. 나는 그냥 듣고만 있기로 한다. 그러다 그의 말과 삶에 지금 시골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낀다. 소중한 증언이다. 수도권에 유명한 치과가 있어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치과는 가까워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남편이 아파서 20년 전에 귀농한 이야기. 수도권과 서울, 미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도시와 외국에 사는 자식들은 그의 성공이고 자부심이자 자랑이다. 하지만 돌아올 자식은 없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2년 전 떠난 남편이 남긴 천평 넘는 땅에 대한 고민. 나이 들어 감당하기 힘들지만 팔기도 빌려주기도 마땅치 않은. 그리고 그의 결론이자 단언. “시골은 살 곳이 못 돼!” 그는 이 말을 몇번이나 강조했다. 그의 말 사이에 몇번이나 딸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댁으로 잘 가셨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사위가 착해.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아무리 착해도 귀찮게 하면 싫잖아.”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의 말들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실은 그날 나는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위한 주민대책회의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궂은 날이면 괴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슬 내린 날 송전탑 아래를 지나가려면 소가 뛰었어요.” 이미 송전탑이 설치된 마을의 주민 증언이 적힌 유인물을 받아들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마을의 삶이 무너집니다!” 이렇게 농어촌은 지난 몇십년 동안 계속해서 삶이 무너져왔다. 도시의 식민지로, 주변부로서 도시를 부양하면서. 그 결과 젊은이들은 떠났고, 돌아온 사람들조차 힘겹다. “도시가 싫어 지속가능한 좋은 삶을 찾아 시골로 이주했더니 각종 개발 반대에 농사지을 시간도 부족해요.” 지난여름, 여성귀농귀촌정책포럼에서 만난 한 참여자가 내게 해준 말이다.

얼마 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인특별위원회가 주관한 ‘성평등 정책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국회 포럼’이 열렸다고 한다.(한국농정신문) 2001년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제정 이후에도 농촌의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하다는 문제, 중앙정부-지자체-농촌현장에 이르는 정책 전달체계 미흡 문제, 지역별 ‘성평등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달된 자리였다고.

소식을 접한 후 나는 개발을 위한 정책 전달체계와 지속가능하고 지탱가능한 주민들의 삶을 위한 정책 전달체계의 속도와 온도차를 생각한다. 그리고 왜 지자체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정책에는 언제나 한발 물러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디 이번엔 지자체가 주민들을 배신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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