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광주극장 꿈 지켜낸 ‘10만원의 연대’

1935년 개관해 한국에 마지막 남은 간판화가의 손간판이 걸리는 호남 최초의 단관극장 ‘광주극장’.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아이유)이 매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깐느극장’으로도 나왔다.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에 모인 4억7500만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이 사라질 뻔한 극장의 숨통을 틔웠다. 광주 동구청 제공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충장로 골목 안쪽, 1935년 문을 연 광주극장에 들어서면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른다. 멀티플렉스에 밀려 단관극장이 거의 사라진 지금도 이곳에선 한국에 마지막 남은 간판화가가 붓으로 영화 간판을 그리고, 800여석 상영관에 고전·독립·예술영화가 걸린다. 조선인이 세우고 운영한 호남 최초의 극장, 백범 김구의 연설을 품었던 이 공간도 운영난과 시설 노후화를 피하지 못했다. 적자에 시달린 소유 재단이 매각까지 고민했는데, 사유재산이라 지방자치단체 예산 투입에도 한계가 있었다.

90여년 역사의 숨통을 틔운 것은 전국에서 날아든 ‘10만원의 연대’였다. 동구가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내건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에 3년여 동안 4억7500만원이 모였다. 이 돈으로 매점에 밀려났던 영사실이 제자리를 찾았고, 2억2천만원을 들여 영사기와 스크린을 새로 놓았으며, 낡은 실외기와 석면도 걷어냈다. 세금이 닿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시민의 선택이 메운 셈이다.

광주극장만이 아니다. 기업 후원이 끊겨 해체 위기에 몰렸던 전국 최초의 발달장애인 청소년 야구단 ‘이티(E.T) 야구단’은 8억1400만원의 기부금으로 글러브를 다시 쥐었다. 기부금으로 문을 연 유기견 입양센터 ‘피스멍멍’은 1년 만에 57마리에게 새 가족을 찾아줬다. 남광주 전통시장의 한 정육점은 2024년 한해 답례품용 삼겹살·목심 세트 6464건을 전국으로 보냈다. 동구가 민간 플랫폼 ‘위기브’와 함께 사업을 알리고 기부자와 소통하면서 연간 모금액은 2023년 9억원에서 지난해 64억원으로 늘었다. 2024년 기부자의 약 58%는 서울·경기 거주자였다. 지난해 전국에서 모인 1515억원의 92%가 비수도권으로 향했다.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기초지방정부에서 기부금은 주민의 일상을 받치는 사회정책 재원이 된다. 오래된 극장을 지키고, 발달장애 청소년이 야구를 계속하게 하며, 전통시장 정육점의 일감을 늘린다. 작지만 절실한 변화다. 지역 밖 사람이 이 변화를 보고 보람을 느끼고 다시 참여할 때, 기부는 지역과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참여를 넓히는 제도적 유인은 충분하지 않다. 지난해 기부 건수의 98.4%가 10만원 이하에 머물렀다. 올해부터 10만원 초과 20만원 이하 구간의 세액공제율을 16.5%에서 44%로 올렸는데도 상반기 모금액은 전년 동기보다 14.5% 줄었다. 상반기만으로 판단하긴 이르지만, 10만원 초과 시 공제율이 급감하는 구조가 ‘10만원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회에는 전액공제 한도를 20만원으로 올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올라 있고, 행정안전부도 한도 상향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러나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0만원 넘는 기부는 기부자도 일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향사랑기부제에는 통상의 기부와 다른 정책 목적이 있다. 거주지 밖 지자체에 기부하고 세액공제를 받는 것은, 납세자의 선택으로 지역 간 재정이전을 촉진하는 설계다. 세금 일부를 어느 지역 어떤 일에 보탤지 시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전액공제 한도는 기부자의 자기 부담 문제이기 전에, 시민 선택을 통한 재정이전을 얼마나 넓힐지의 문제다. 세수 감소와 지역이 얻는 재정·경제 효과를 함께 따져야 한다.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도심 빈 건물을 고쳐 만든 전남광주 동구의 유기견 입양센터 ‘피스멍멍’. 정성스러운 돌봄 속에 건강을 되찾은 유기견들이 직원들의 품에 안겨 함께할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다만 이 제도의 목적은 세액공제가 아니라 지역의 변화다. 국정감사에선 기부금을 한푼도 쓰지 않은 지자체가 61곳, 이들을 포함해 집행률이 20%에 못 미친 곳이 116곳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모금에만 힘쓰고 주민에게 필요한 사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제도의 설득력은 약해진다. 한도를 높이는 일과 쓰임을 책임지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지자체는 무엇을 위해 모금하고 언제 어떻게 쓸지 밝히고, 기부자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

정부 세제개편안의 지역별 차등 공제는 내년부터 10만원 초과 기부금에 한해 여건이 어려운 지역일수록 공제율을 높이는 설계다. 재원이 더 필요한 곳으로 기부를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다만 비수도권 광역시의 자치구는 공제율이 같을 가능성이 커 동구 같은 대도시 원도심의 사각지대는 메워지지 않는다. 한도 상향이 참여 문턱을 낮추는 설계라면 지역 차등은 돈이 갈 곳을 가리키는 설계다. 두 안을 함께 심사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 시민이 기부를, 지자체가 사업을 준비하도록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제 확대 폭과 적용 시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가 답할 차례다. 지역과 시민이 서로를 부양하는 ‘마음의 시민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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