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출산율 내려놓은 인구정책, 이번엔 다를까

아이 몇 명이 태어났나. 지난 20년 가까이 인구정책의 성적표는 늘 이 숫자 하나였다. 숫자는 매년 나빠졌고, 그때마다 대책이 쏟아졌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나.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인구절벽이다. 

10월 14일 대통령 직속 인구전략위원회가 제1차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 인구정책의 밑그림이다.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출산율과 인구규모 중심의 양적 접근에서 벗어나겠다고 했다. 대신 삶의 질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성과지표도 바꿨다. 2030년까지 삶의 만족도 7.0점, 경제활동참가율 74.0%. 청년 고용률은 2025년 45%에서 2030년 50%로 올리겠다고 했다. 

이 전환이 반갑다. 출산율을 올리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청년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려금이 적어서 아이를 안 낳은 게 아니다. 집이 없고, 일자리가 불안하고, 아이 볼 시간이 없어서다. 맞벌이로 하루하루 버티는 청년들에게 출산은 계획표 우선순위에 없다. 정부가 이제야 청년들의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출산율을 목표에서 빼면 정부가 책임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런데 거꾸로 물어보자. 출산율을 목표로 붙잡고 있던 지난 세월, 그 숫자를 지킨 적은 있나?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을 높이는건 쉽지않다. 

결혼 페널티부터 손본다

이번 계획에서 실제로 피부에 닿을 만한 것들이 있다.

먼저 집이다. 역세권 같은 선호 입지에 청년·신혼·양육가구 대상 공공주택 57만1천호를 공급한다. 청년미래 보금자리론도 새로 만든다. 두고 볼 일이다. 집문제 해결은 역대 정부가 다 풀지못한 숙제다.

신혼부부 정책대출 요건도 바뀐다. 부부 중 한 명만 소득기준을 충족해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둘의 소득을 합치면 기준을 넘어 대출 문이 닫히는 경우가 있었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생긴 이유다. 결혼하면 손해 보는 제도를 정부가 만들어놓고 결혼하라고 해온 꼴이었다.

양육지원 사각지대도 좁힌다. 예술인, 특수고용근로자,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에게도 육아수당을 지원한다. 육아휴직은 사실상 정규직 직장인의 제도였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부모는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일하는 방식은 바뀌었는데 제도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노동자가 육아휴직과 유연근무를 상황에 맞게 고르는 유연근무 선택제도 추진한다.

비혼 출산 아동에 대한 언급도 있다.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1인가구 통합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가족형태 지원도 확대한다. 부모가 결혼했느냐에 따라 아이가 받는 대우가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당연한 얘기를 이제야 계획에 적었다.

고령사회 대책도 담겼다. 치매 고령자를 위한 공공후견과 조기검진, 주치의 제도를 확대한다. 복지주택·실버스테이 같은 고령친화형 주택 2만5천호를 5년간 공급한다. 지역소멸 대응을 위해 예산 편성 단계에서 지방우대 원칙을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예산과 실천이 중요하다

좋은 계획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문제는 늘 실행이었다.

인구정책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주거는 국토부, 일자리는 노동부, 돌봄은 복지부다. 부처마다 제 사업을 챙기면 전체 그림은 흐려진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말이 매번 나왔다. 그리고 매번 위원회는 권한 없는 회의체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는 장치를 하나 넣었다. 예산 사전협의제다. 인구전략위원회가 각 부처 인구 관련 사업의 투자 방향과 우선순위를 예산안 확정 전에 조율한다. 분야별·산업별 인구변화와 영향을 주기적으로 공표하는 인구영향예고제도 도입한다.

방향은 맞다. 그런데 협의와 조율은 강제력이 없다. 부처가 위원회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기획재정부가 다른 판단을 내리면 누가 이기나. 

가장 어려운 질문은 또 뒤로

이번 인구계획에 아쉬운 대목도 있다. 글로벌 인재 유치와 이주민 정주 확대는 실행괴제가 아닌 도전과제로 분류됐다. K-돌봄 체계, 에이지테크 기반 청년 돌봄전문인력 양성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공론화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구체화하겠다고 했다.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이주민 문제는 여론이 갈리는 영역이다. 섣불리 밀어붙이면 역풍이 분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누가 이 사회에 들어오고,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필자 역시 이 땅에 늦게 들어온 사람이다. 제도가 늦게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회의 삶의 질을 보여준다는 걸 몸으로 안다. 이미 우리 곁에는 여러 배경을 가진 이웃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정책의 본문이 아니라 부록에 두면서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까?

‘공론화’가 다음으로 미루는 변명이 되어선 안 된다.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논의할지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

이 계획,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계획은 확정안이 아니다. 최종 의견수렴과 수정·보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심의·의결이 남았다. 

출산율을 내려놓고 삶의 질을 보겠다는 정책 방향은 옳다. 동시에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 삶의 질은 출산율보다 지표화가 어렵고, 성과도 더디게 나온다. 그래서 쉽게 구호로만 남을 수 있다.

5년 뒤 이 계획을 평가할 때 남는 건 7.0점이라는 숫자가 아닐 것이다. 집 구하기가 조금 덜 막막해졌는지. 아이 키우며 일하기가 조금 덜 버거워졌는지. 늙어서 살 곳이 조금 더 안심되는지. 정부가 숫자를 내려놓았다면, 이제 사람들의 하루로 답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슬로건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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