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 ‘전공정’ 압박 속 첫삽… SK하이닉스, ‘메이드 인 USA HBM’ 승부수

26일(현지시각)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의 에스케이(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팹 건설 현장에서 김현중 인디애나 팹 프로젝트 건설팀장이 공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웨스트라피엣/김원철 특파원

“돌부터 다릅니다.”

26일(현지시각)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의 에스케이(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건설 공사 현장. 김현중 인디애나 팹 프로젝트 건설팀장은 한국과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가장 큰 차이를 묻자 땅부터 가리켰다. 한국에서는 무거운 반도체 장비를 받치는 기초 파일을 단단한 암반에 박지만, 이곳에는 암반이 거의 없어 파일을 더 많이, 더 굵고 깊게 박아야 한다고 했다. 김 팀장은 “한국과 문화, 언어, 환경, 인식 차이가 커 매일매일 새롭다”고 말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 옥수수와 콩을 심던 농경지였던 현장에는 현재 회색 콘크리트 기둥과 철근이 넓은 평지 위로 거대하게 솟아 있었다. 향후 2층에 들어설 클린룸을 떠받칠 기둥들이다. 클린룸은 무거운 장비의 하중을 견디면서 미세한 진동까지 완벽히 억제해야 해 일반 건물보다 구조물이 훨씬 촘촘하다. 김 팀장은 “전체 공정률은 약 7%, 기초 건축 공정은 약 15%로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며 “전기·설비 공사가 본격화하는 내년 피크 시점에는 투입 인력이 하루 최대 3천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미국 내 첫 반도체 생산기지인 ‘인디애나 팹’ 착공식은 27일 퍼듀대학교 홀러웨이 체육관에서 열렸다. 총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약 54만㎡ 부지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생산라인과 연구개발(R&D) 시설을 짓는 대규모 사업이다. 미국 정부도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4억5800만달러(약 6300억원)의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약 6900억원) 대출을 지원한다.

26일(현지시각)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 버크 나노테크놀로지센터 클린룸에서 한 연구자가 반도체 장비를 다루고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퍼듀대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패키징 기술 공동 연구와 반도체 인재 양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웨스트라피엣/김원철 특파원

이번 착공식에 유독 이목이 쏠린 것은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을 향해 메모리 전공정(웨이퍼 제조)까지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하지만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인디애나 팹은 미국이 요구하는 ‘메모리 칩 자체의 미국 현지 생산(전공정)’과는 결이 다르다. 이 공장은 한국에서 제조한 웨이퍼를 미국으로 가져와 칩을 쌓고 연결해 고대역폭메모리로 완성하는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지다. 한국에서 자동차 엔진과 핵심 부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서 조립해 완제품으로 만드는 식이다.

곽노정 에스케이하이닉스 사장은 27일 행사에서 연간 수십만장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인디애나를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USA) 고대역폭메모리’ 공급의 핵심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공장 건설부터 철저한 현지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기초 건축은 미국 업체가 맡고, 철근 등 주요 자재 역시 최대한 미국산을 사용한다.

인디애나 팹은 향후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미국 내 추가 메모리 생산시설 투자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인력을 확보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한편 현지 업체와 협업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도 지난달 추가 팹 투자와 관련해 세제 혜택과 재정 보조금 등 사업 조건이 맞는다면 미국을 포함해 어느 지역이든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웨스트라피엣(미국 인디애나주)/글·사진 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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