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20일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이번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명목 국내총생산(GDP) 후반 경제의 환희, 낯섦,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지디피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1분기 명목 지디피는 전기 대비 10.5%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해, 30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 실장은 “이번 호황은 착시가 아니다”라며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폭발이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렸고,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폭증했다. 코스피 9000 포인트를 넘어섰고,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 규모로 달러가 실제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법인세 수입은 급증해 재정여유가 생겼고, 국가채무비율은 다시 50% 아래로 내려갈 전망”이라며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도 당초 예상했던 2028년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달성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로 인해 경제 전체가 좋아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는 10%를 넘겼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에 머물고 있다. 거시지표는 뜨겁지만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폭증하는데 동네 상가는 공실을 걱정한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향하는데 폐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또 김 실장은 “게다가 반도체 수출 급증에 따른 증시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리밸런싱을 자극하면서, 과거의 상식과는 반대로 원화 약세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수입물가와 국내 물가 압력을 높이고, 내수기업들의 채산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진짜 고비는 연말과 내년 초라고 짚었다. 김 실장은 “더 걱정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차를 두고, 파도처럼 밀려온다”며 “사람들은 좋은 숫자들을 뉴스에서 보고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과 연결된 현실이라고까지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그러나 하반기가 되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며 “상반기 실적이 확정되고 성과급 규모가 가시화되면 사람들 마음속에 조금씩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다. 명품 소비가 살아나고 선호 지역의 부동산 매수 심리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 같은 유동성이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실장은 “성과급이 실제로 지급되고 임금 인상이 현실화되고 수출 대금이 국내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행동도 달라진다”며 “호황을 선반영했던 주식시장도 어느 정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경향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예외일 것이라고 쉽게 장담하기는 어렵다”며 “부동산 과세를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축적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집중될 경우 거시지표 개선과 체감경기 간 괴리가 더욱 커지고, 경제 전반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 실장은 부동산 과세 정상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이번에는 빚을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금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생기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금리도 마찬가지”라며 “중동 정세가 안정되고 원화가 정상 수준을 되찾는다면 수입물가 압력은 다소 진정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높은 명목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지금의 금리 수준이 영원히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며 “관건은 이 돈을 어디로 흘려보낼 것인가”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결국 이것은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고, 지금 생겨난 여유를 어떤 미래로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재정 여력과 기업 이익을 청년과 취약계층, 미래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이번 호황은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역대급 호황은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행력도 함께”라고 덧붙였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