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에도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피해 영상이 또 다른 키워드로 국내에 유포됐다’, ‘딥페이크로 2차 가공한 영상물도 여럿 보인다’는 거였죠. 피해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구나. 영상 올라온 게 2년 전인데 (유포·확산이) 벌써 몇번째인지 몰라요.”
밤이 찾아오면 ㄱ씨는 휴대폰을 켠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검색어를 자기 손으로 입력한다. 결과는 늘 좌절스럽다. 영상은 나날이 늘어가고 연관 검색어도 악의적으로 변해갔다. “마치 제가 원해서 올린 것처럼 키워드를 달아서 유포한 글도 많아요. 몸이 다친 건 낫기라도 할 텐데 이런 피해는 평생 끝나질 않잖아요. 주변에선 ‘찾아보지 말라’지만 가만히 두면 더 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자꾸 찾아보게 돼요.”
2024년 봄을 ㄱ씨는 또렷이 기억한다. ‘네 영상 아니냐’며 지인이 보내준 링크를 열어 봤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과거 연인이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거였다. 악질적 성범죄물 유포 사이트였다. 다른 불법 사이트가 이를 퍼나르면서 영상이 순식간에 수백건으로 확산됐다.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런 일을 겪고 어떻게 다시 인간관계를 맺으며 공공장소에 갈 수 있을까, 언제든 영상이 유포될 위험을 안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을까? 일상생활 중 누가 카메라 드는 행동만 해도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고통 속에서도 삶을 재건하려 부단히 애썼다.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했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잘못한 것이 없기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퍼진 영상을 보면 여전히 아득해진다. “저 말고도 피해자가 너무 많아요. 누가 봐도 불법촬영물처럼 보이는 영상이 하루 수천개씩 올라와요. 아무나 그걸 보고, 내려받고, 2차 가공까지 하는데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없는 거예요.”
피해자들은 이처럼 절박하지만, 불법촬영·딥페이크 영상물 등 디지털 성범죄물의 접속 차단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관인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는 지난 10개월여 개점휴업 상태였다. 일선 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디성센터)가 피해를 접수해 차단 안건을 올려도, 지난해 6월 초부터 심의 절차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류희림 위원장 체제’가 붕괴한 여파였다.
새 정부 이후 출범한 방미심위는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방미심위는 지난달 14일 성범죄물 심의를 재개해 한달여 만에 2만1961건 차단 시정요구를 완료했다고 19일 발표했다. 그간 밀려 있던 안건을 모두 해소했다고 홍보한 셈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간절한 기다림과는 달리, 방미심위가 최근 차단 심의를 완료한 게시물 상당수가 그대로 접속되는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다. 피해자 신고를 대신 접수하는 기관인 인천 디성센터가 지난 4월 심의 재개 이후 이달 19일까지 ‘심의 완료’를 통보받은 198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143건(72%)이 여전히 접속 가능한 것이다. 브이피엔(VPN)을 쓴 것도 사이트 주소(URL)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절반 이상은 피해자 이름 등 개인 정보까지 버젓이 적혀 있었다. 모두 2025~2026년에 센터가 방미심위에 차단을 요청한 건이다.
이는 최소한만 확인된 수치다. 피해 삭제를 지원하는 디성센터는 인천 외에도 4곳 더 있다. 이외에 방미심위가 다루는 성범죄물 안건의 절반 이상이 자체 모니터링이나 경찰을 통해 들어와 사후 추적이 어렵다. 다만 감사원은 방미심위가 2024년 통신사에 차단을 요구한 딥페이크 성범죄물 사이트 1천건을 무작위 추출한 결과 854건(85.4%)이 여전히 접속 가능한 사실을 확인했다.

ㄱ씨가 디성센터를 통해 차단 요청해 ‘처리 완료’ 통지를 받은 게시물도 버젓이 접속이 가능했다. ㄱ씨를 돕는 디성센터 직원들은 궁여지책으로 불법 사이트에 이메일을 보내 삭제를 애걸했다. 대부분은 답이 없었다. ㄱ씨는 국가의 무능에 진저리를 쳤다. “피해자로서는 ‘국가 보호를 전혀 못 받는구나’ 하는 무력감이 들죠. 이렇게 피해가 큰데, 국가가 접속 차단조차 못 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요.”
이런 무능엔 규제·수사 당국이 성범죄물 유포 사이트의 회피 기술을 방치하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업자들은 평소 데이터 원본을 대부분 국외에 있는 본서버에 따로 저장해 두고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보낼 땐 가까운 서버를 빌려 쓰는 콘텐츠 전송 서비스(CDN)를 활용한다. 특정 서버에서 사이트가 차단돼도 다른 임시 서버 등을 통해 똑같은 사이트를 구현할 수 있다. 수사당국이 본서버를 압수하거나 방미심위가 범죄 집단의 회피 기술을 무력화해야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지난해 7월 법 개정으로 시디엔 사업자에도 차단 의무를 부과했지만, 불법 업자들은 이미 암호화 기술로 감시를 피해 가는 실정이다.
통신사의 무성의한 대응도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통신사가 방미심위의 차단 목록과 실제 차단 주소를 서로 대조하지 않아 차단이 누락된 건도 수두룩했다. 방미심위가 사후 관리에 부실한 결과다. “접속 차단의 실효성은 시간과 자원을 얼마나 투자하냐에 달렸어요. 통신사가 차단을 제대로 안 해도 아무 제재가 없는데 얼마나 공을 들일까요? 정부가 성착취로 돈을 버는 사람들만큼도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데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인천 디성센터의 류혜진 총괄팀장이 지적했다.

방미심위의 차단 심의 절차는 그 자체로 시간 낭비의 주범이기도 하다. 성범죄물은 초기 확산세를 잡는 게 중요한데 피해자에게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며 불필요한 실랑이로 시간을 허비한다. “이미 본인 얼굴과 신체가 다 노출된 분들인데 신분증까지 주면 신원이 완전히 특정되잖아요. 피해자에겐 굉장한 심적 부담이죠. 심지어 신분증 보고 (방미심위에서) ‘영상이랑 다르다’거나 ‘비제이(BJ)처럼 스스로 촬영한 사람은 제외’라고 연락 온 적도 있어요.” 인천 디성센터의 김한솔 대리가 말했다.
또 위원회 서면 심의도 거쳐야 한다. 성범죄물은 명예훼손 등의 게시물과는 달리 피해 사실이 육안상 곧바로 드러난다. 그런데도 위원들은 하루에 수백건씩 휴대폰으로 성범죄물 목록을 넘겨받아 ‘동의’ 버튼을 누른다. 사실상 요식행위인 이마저도 주말과 공휴일은 쉰다. “지금처럼 한땀한땀 삭제·차단하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어요. 피해 영상물을 매개로 수익을 올리는 성착취 구조 자체를 타격해야죠.” 류혜진 팀장이 말했다.
최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경찰청, 성평등가족부와 통합지원단을 꾸렸다. 심의를 생략한 신속 대응과 불법 사이트 강제수사, 성범죄물 사이트 검색 노출 금지 등이 과제로 꼽힌다. 다만 당장 기존의 절차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한편, 방미심위는 “연 2회 사후 점검과 통신사 차단 대조 사이트 구축에 필요한 내년도 예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