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두고, 광주 동구에 사는 31살 이가현과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32살 김규정(가명),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사는 22살 황품예는 “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전해지는 공약에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던 청년들은, 끝내 손에 쥔 한표는 행사할 작정이라고 했다. 이유는 절박하다. “더는 동네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1340여만표(2025년 대선 기준). 결코 적지 않은 20~30대 청춘의 표는 흔히 ‘스윙’, ‘부동’으로 불린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20대 비율은 39%(5월1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이른다. 덜 간절해서는 아니다. 어느 쪽 공약도 아직은 와닿지 않는 탓이다. 취업 포털을 아무리 뒤져도 지방 도시에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이가현). 계약 기간 만료마다 불안에 떨며 언제까지 서울 시민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김규정). 영주권을 가진 이주민에게조차 여전히 차가운 경계선이 그어진다(황품예). 청년을 ‘내 동네’에서 밀어내는 이토록 흔한 부재와 불안, 차별에 답하는 지역 정치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기회가 없어 고향을 떠나려는 지방 청년, 폭등하는 주거비에 다음 거처를 고민하는 서울 청년, 편견을 넘어 온전한 유권자로 인정받고 싶은 이주민 청년까지. 한겨레는 광주와 서울, 안산에서 세 청년이 행사할 ‘지방선거 한표’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 “한예종 이전 공약 분노…지역 일자리를”
1990년대에 멈춘 듯한 골목길과 오래된 다세대주택, 밤 10시면 일제히 간판 불이 꺼지는 조용한 동네. 이가현씨에게 광주광역시 동구는 일곱살 때부터 살아온 애증의 ‘내 동네’다. “우리 동네가 맘에 들어요. 나름대로 광주에 살면서 꾸려온 커뮤니티가 저에겐 소중하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진짜 나답게 살려면 결국 떠나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을 자꾸만 스스로 던지게 돼요.”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취업을 꿈꾸던 이씨에게 경기도 안산에서 보낸 대학 시절 3년은 평생 살던 광주를 처음 벗어난 경험이었다. 지하철만 타면 ‘중앙’(서울)에 닿을 수 있다는 감각은 강렬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며 결국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다. 이씨는 “다시 광주로 내려올 때 중앙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펑펑 울었다”고 했다.
돌아온 고향의 ‘일’들은 좁고 고여 있었다. 인맥과 학연을 뚫고 구한 공공기관 일자리는 ‘2년 계약직’이었고, 더 안정적인 조건을 찾아 취업한 도시재생 업체는 이름만 그럴듯한 ‘블랙 기업’이었다.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하고 손에 쥔 첫 월급은 160만원에 그쳤다.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버티다, 학원 강사로 일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흘렀다.
이씨는 “취업 포털을 검색하면 제 경력으로 지원할 만한 업체가 수도권에는 수십개라면, 광주는 건축업·쿠팡·텔레마케팅을 빼고 나면 대여섯개뿐”이라고 전했다.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에 다시 수도권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치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막연한 계획에 그친다. “괜히 채용 사이트의 서울·경기 탭을 들여다보면서 상상 속에서 지원서를 씁니다.”
그런 이씨에게 들려오는 지방선거 공약은 ‘뜬구름 잡기’다. 동네 후보들이 외치는 ‘골프장 유치’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고, 최근 지역 정치권이 띄운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뉴스에는 분노마저 치밀었다. “광주에 학생이 머물 토양이 없는데 학교만 옮기면 능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게으르다고 봐요.”
그래서 이씨는 한예종이나 인공지능(AI)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을 앞세운 공약 대신, ‘광주’라는 공간을 성실하게 연구한 일자리 공약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히 취업자 수만 채우는 인턴 지원금 정책 대신, 지역 청년들이 서울에 가지 않고도 고향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광주라는 지역 특색 안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먼저 진단해야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는데, 지역 정치인들은 외부의 근사한 것들만 가지고 오려고 한다”며 “제 삶과 일치되는 공약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 “개발 공약 경쟁만…노후 주거지 지원 필요”
서울에서 주거 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원 김규정씨에게 서대문구는 20대의 기억이 빼곡히 들어찬 ‘내 동네’다. 본가는 경기도 김포이지만, 20대 내내 서대문구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월셋집을 전전했다. 반지하 월세방 온 구석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등 크고 작은 곤욕을 치르고서도, 그는 늘 다시 서대문구로 돌아왔다.
김씨가 서대문구에 정착하려 애쓴 것은 주로 교통난 때문이다. 사람이 들어찬 광역버스와 악명 높은 ‘김골라’(김포 골드라인)의 인파 속에 매일 체력을 갉아먹는 통학·통근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2년 전 월세 100만원을 나누어 낼 친구를 찾아 또다시 서대문구, 새집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에어컨이 없어 냉풍기로 한여름을 버텨야 하는 노후 주택이지만 자전거로 15분 만에 광화문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주거 질을 양보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2년짜리 서대문구 시민권’의 유효기간이 임박하며 다시 익숙한 불안의 시기를 겪었다. 전월세 상한제 최대치인 5% 수준까지 월세를 올려 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임대인은 월세 100만원에 보증금 월 환산액까지 합한 금액의 5% 인상분을 계산해 매달 6만원을 더 내라고 요구했는데, 김씨와 친구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공공임대 주택과 서울 다른 지역 더 싼 집을 알아보려던 차에 집주인은 다행히 ‘월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집주인의 ‘변심’ 덕에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다.
김씨가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당장 서울살이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주거 형태가 절실하지만, 거대 양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은 ‘신통기획’ ‘착착개발’ 등 거대 개발 공약으로 맞붙고 있다. 청년 세입자들에게 속도전 개발 공약은 ‘새집’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언젠가 동네에서 밀려날 명분처럼 보일 뿐이다. “재산세를 깎아주네 마네, 한강벨트 집값을 올리네 마네 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고 있으면, 이번 선거는 철저히 ‘내 일이 아니구나’ 싶죠.”
주거 연구자이자 당사자인 김씨가 원하는 주거 정책은 따로 있다. 몇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청년 대상 공공임대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고, ‘언젠가 재개발될 곳’이라는 이유로 방치된 동네를 꼼꼼히 관리해주는 것이다. 김씨는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정비사업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당장 청년들이 거주하는 노후 주택 집수리를 지원하고 골목길을 깨끗하게 관리해주는 정책도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외국인과 어우러진 안산…특혜 아닌 같은 대우를”
경기 안산시 상록구는 중국 국적 이주 청년인 대학생 황품예씨의 ‘내 동네’다. 2014년 열살 나이에 먼저 한국에 정착한 부모님을 따라 입국한 뒤, 안산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이 됐다. 황씨의 정체성은 중국인보다 한국인에 훨씬 가깝지만, 한국 사회는 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긋곤 했다.
황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굳이 국적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반중 집회도 그렇고 중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 아니냐”며 “처음 만난 관계에서 국적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대할까 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애 첫 투표권’을 쥐게 된 이번 지방선거는 그에게 온전히 한국 사회 일원이 되는 소중한 기회다. 지방선거는 황씨처럼 영주권을 지닌 이주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유일한 공직선거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첫 이주민 투표가 시행된 뒤,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영주권 취득 뒤 3년이 지난 18살 이상 이주민 14만여명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 황씨는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된 뒤 “신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황씨는 굳이 ‘이주민 유권자’가 아닌 평범한 ‘안산 시민’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에게 안산은 외국인과 원주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동네다. 좋은 지역 정치가 동네에 주는 혜택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황씨는 우선 “반월산업단지 등 제조업 공단에 치우친 안산 일자리가 보다 다양해져서, 안산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나, 기형적인 안산 남부 지역의 버스 노선을 보완할 ‘신안산선 연장’ 공약에도 관심이 많다.
황씨는 “부모님 세대는 한국에 그저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마인드’가 강했지만, 한국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우리 세대는 그냥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안산의 발전 공약을 이야기하면서도 “국적 때문에 편견이나 차별을 겪을까 걱정도 된다”고 덧붙인 이유다. “외국인이라고 무언가를 더 주는 공약이 아니라도 전체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해요.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같은 지역에 사는 동등한 주민으로서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