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규 | 이슈부국장
5·18을 경험한 광주 시민에게 탱크는 단순한 군용차량이 아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19일부터 광주 전역에 육군 기갑부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5월20일과 21일, 탱크와 장갑차는 택시·버스 등의 차량 시위를 저지하는 데서 나아가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5월27일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마지막 시민군을 진압할 때도 탱크가 앞장섰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26년 5월18일을 ‘탱크 데이’라고 부르며 “책상에 탁” 올릴 수 있다는 텀블러를 할인 판매했다. 5·18 살육의 도구를 그 기념일에 부각하며 박종철 열사 등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이들을 조롱하고 모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교활하고 지능적인 이벤트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2022년 1월8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서울 사당동 이마트를 방문해 카트를 끌며 여수 멸치와 약콩을 집어 들었다. 이보다 3일 전 인스타그램에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입길에 올랐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연결’되는 행보였다. 정 회장은 2021년 11월부터 인스타그램에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과 함께 “콩콩콩”거리며 공산당을 희화화하는 기행을 보이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유치한 정치 기획이었지만 윤 후보는 “멸치는 육수를 많이 내서 먹기에 자주 사는 편이며, 콩은 콩국을 만들어 뒀다가 아침에 먹는 일이 많아 사두는 품목”이라며 별 뜻이 없었던 장보기라고 주장했다. “가까운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산 것뿐”이라고도 했다. 당시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반박하고 싶은 마음에 ‘네이버 길찾기’로 대형마트와의 거리를 따져보니,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사당동 이마트까지의 거리는 잠원동 킴스클럽(1.5㎞), 서초동 롯데마트(1.6㎞)보다 훨씬 먼 3.8㎞였다. 정 회장을 향한 윤 후보의 지지는 ‘에이아이(AI) 윤석열’(위키윤)을 통해 확인됐다. 인공지능으로 윤석열이 말하는 모습을 재현하며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위키윤 플랫폼에서, ‘에이아이 윤석열’이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샀다고 홍보하는 동영상 파일의 이름이 ‘yj_loves’였다. 정 회장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정확히 일치했다. ‘샤라웃’(Shout-out, 에스엔에스에서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응원하는 행위)이나 다름없었다.
광주를 짓밟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을 윤석열은 진작에 높이 평가했다. 윤 후보는 2021년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했다가 강한 반발을 샀다. 그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을 진압한 건 잘못한 일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이 돼서는 ‘전두환의 길’을 갔다. 전두환이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정권 찬탈의 마각을 드러냈듯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3일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다. 44년 만의 전국 비상계엄 선포였다. 그는 그날 밤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담화를 읽었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정 회장처럼 윤 전 대통령도 공산당을 싫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가 확인했듯,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에 무산되고 윤 전 대통령 단죄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후과는 여전하다. 최고 권력자가 부정선거 등의 음모론과 색깔론, 갈라치기를 서슴없이 설파하자 지지자들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 데이 이벤트도 총수의 ‘자유로운 사상’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힘 있는 자들이 판을 깔아주자 추종하는 이들이 거리낌없이 뛰어노는 ‘혐오와 조롱의 낙수효과’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이들이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고품격 커피와 굿즈를 팔고 있다. 무서운 현실이다.
파문이 커지자 정 회장 본인도 역사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는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데 신세계그룹의 회장은 좀 달랐으면 좋겠다. 시민들의 힘으로 내란을 극복한 대한민국은 ‘윤석열 시대’와 다른 신세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