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스틸(70·한국명 박은주)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가 20일(현지시각)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들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며, 인준을 받으면 한국 정부와 관련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쿠팡 등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별 우려와 미국 농산물 비관세 장벽, 한국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이행 방안 등이 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스틸 후보자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누리는 것과 동일한 시장 접근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한미 정상 간 합의 내용을 담은 공동설명자료를 거론하며 “미국 기업이 차별받아선 안 되며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 있는 모든 한국 기업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만큼, 한국에 있는 미국 기업들도 한국 기업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빌 해거티(공화·테네시) 의원이 쿠팡을 포함한 일부 미국 기술기업의 한국 내 처우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해거티 의원은 “일부 미국 기술기업이 한국에서 차별받는 듯한 모습이 우려스럽다”며 “미국 기업들, 특히 기술기업이 한국 기업뿐 아니라 예를 들어 중국 기업과 비교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요청했다. 스틸 후보자는 “인준을 받는다면 그 점을 분명히 챙기겠다”고 답했다.
미국 농산물 시장 접근 문제도 제기됐다. 피트 리케츠(공화·네브래스카) 의원은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한국의 비관세 장벽과 대두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축소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 간 합의된 비관세 장벽 완화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스틸 후보자는 “대두를 비롯한 농산물 관련 무역 문제에 대해 인준된다면 한국 정부 및 관련 무역 현안을 담당하는 관계자들과 직접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스틸 후보자는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서도 구체적 이행 방안을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한미 간 합의된 3500억달러 규모의 한국 대미 투자와 관련해 “그것이 정확히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500억달러를 넘는다고 언급하며, 인준을 받으면 미국의 대한국 수출을 늘릴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했다.
진 샤힌(민주·뉴햄프셔) 외교위 간사는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액의 구체적 용처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며 관련 정보를 상원 외교위원회와 투명하게 공유해달라고 요청했고, 스틸 후보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청문회에서는 한미동맹의 군사·안보적 역할도 강조됐다. 제임스 리시(공화·아이다호) 외교위원장은 “한국은 여러 면에서 미국의 모범적 동맹”이라며 조선, 반도체, 인공지능, 원자력 분야 협력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샤힌 간사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동맹에 대한 약속을 확고히 보여야 한다며, “한국 같은 동맹국들이 미국의 약속이 굳건한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틸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한미동맹이 “70년 넘게 동북아의 평화, 안보, 번영을 지탱하는 핵심축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한미군 2만8500명과 미국의 확장 핵 억지력으로 강화된 공동 방위태세는 여전히 철통 같다”며 “북한의 불법 무기 프로그램, 확대되는 사이버 범죄 작전,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 함께 중요한 3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시 위원장이 남북한의 정치·사회·경제적 격차에 대한 견해를 묻자, 스틸 후보자는 자신의 부모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란한 실향민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 일본, 한국 간 매우 강력한 동맹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한국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 케인(민주·버지니아) 의원은 스틸 후보자가 하원의원 시절 주도했던 ‘재미 이산가족 국가등록법’을 언급하며, 남북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산가족 문제를 우선순위에 둘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틸 후보자는 별도 답변을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해당 법안의 하원 대표 발의자로서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스틸 후보자를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스틸 후보자는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선출위원,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등을 거쳐 2021년부터 4년간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스틸 후보자는 외교위와 상원 전체회의 인준 절차를 통과해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할 수 있다.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전임 필립 골드버그 대사가 지난해 1월 이임한 뒤 1년 넘게 공석이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