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단백질로도 바이러스처럼 대형 구조체 형성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왼쪽)와 이상민 포항공대 교수. 이상민 교수 제공

그간 인공 단백질 설계는 완벽하게 대칭적인 작은 구조를 만드는 데 의존해왔는데, 최근 국내 연구자가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자연계의 바이러스처럼 하나의 단백질이 대형 구조체를 만드는 원리를 인공적으로 구현해냈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상민 포항공대 교수(화학공학과)가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단일 단백질 구성요소가 오·육각형 배열을 동시에 형성하며 바이러스 유사 구조로 자가조립되는 설계 원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국제저널 ‘네이처’에 발표됐다.

데이비드 베이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설계하고 합성하는 기술을 개척해,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학자다. 속이 비어있는 나노미터 크기의 인공 단백질 구조체인 ‘나노케이지’는 그가 개척한 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의 성과로, 내부에 약물이나 유전물질, 효소 등을 탑재해 인체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최근 의료·바이오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핵심 소재다.

다만 이를 설계하는 기존 기술은 ‘완벽한 대칭 구조’를 만드는 데 주로 의존해왔다. 단백질들이 엉뚱한 모양으로 뭉치는 것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나노입자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하나의 단백질로 구현할 수 있는 구조체의 크기가 매우 제한적이고 형태가 단순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자연계의 바이러스는 하나의 단백질만 반복적으로 쓰면서도 각 단백질이 놓이는 위치와 환경을 미세하게 조절해 거대한 껍질을 만들어낸다. 이런 원리를 ‘준대칭성’(quasisymmetry)이라 한다.

왼쪽은 자연계 바이러스가 단백질을 배열해 만든 껍질 구조, 오른쪽은 이를 모방해 인공지능으로 설계한 속 빈 단백질 나노케이지. 이상민 교수 제공

이번에 연구진은 인공 단백질 설계에서도 이 ‘준대칭성’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연구진은 단백질이 평평하게 배열되면 껍질이 닫히지 않고, 너무 많이 휘면 구조가 커지지 못하고 작아진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에 그 중간 영역을 정밀하게 설계해, 같은 단백질이 어떤 위치에서는 오각형, 다른 위치에서는 육각형을 형성하도록 했다. 단백질 세 개가 모인 ‘삼량체’ 단위를 기본 블록으로 삼고, 마치 같은 레고 블록이 서로 다른 각도에 맞물리는 것처럼 이들이 평평한 판이 아니라 돔처럼 둥근 껍질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단백질들이 스스로 뭉쳐 최소 70나노미터에서 최대 220나노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둥근 껍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상민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단백질 설계가 작은 대칭 구조를 넘어, 단백질 블록의 국소 구조 조절을 통해 바이러스 크기 수준의 복잡한 나노소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약물 전달체, 백신 플랫폼, 효소 캡슐화, 인공 세포소기관, 프로그램 가능한 생체소재 개발 등의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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