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준 |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전 유엔 대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 5월, 가족의 의미를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내고 아픔 속에 그리워해야 하는 가정도 있다. 온 가족이 나들이를 나서는 풍경에 익숙한 이 계절에, 그런 일상을 빼앗긴 가족들의 슬픔은 조용히 깊어진다. 아동, 청소년의 죽음은 언제나 너무 때 이르고, 남겨진 이들의 고통 앞에 우리 모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2024년 한해 동안 사망한 19살 이하 아동, 청소년은 1635명이다. 이 가운데 약 40%인 611명은 자살이나 살해, 교통사고, 질식, 추락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질병 등 자연적 이유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 속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아이도 149명이나 된다.
아동의 사망 원인이 아동 개인이 아닌 외부, 즉 우리 사회에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이를 살릴 기회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아동사망검토제도를 운영 중이거나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동의 사망 원인을 단순히 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분석하고 되짚어 봄으로써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세이브더칠드런이 공동 개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일본 소아과학회 아동사망검토위원장인 누마구치 아츠시 교수는 예방 가능한 아동의 사망이 약 25%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사망검토는 2013년 울산 울주에서 일어난 이서현(가명) 아동에 대한 학대 사건이 계기였다. 여러차례 신고와 구조 신호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사건 발생 후, 아이의 삶과 그 주변을 최대한 자세히 복기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민간 주도 조사였기에 자료와 진술을 얻는 과정은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결과물인 ‘이서현 보고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이정표가 되었다.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 논의 역시 이 보고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는 8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아동 학대로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분석한다고 발표했다. 민간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서현이와 같은 아이들을 살펴본다는 점은 분명 큰 진전이다. 다만 우리가 예방해야 할 죽음이 아동 학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정부도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고, 국회에는 포괄적인 아동사망검토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2024년 12월에 이어 지난 4일에도 발의된 만큼 제도 도입을 더 늦출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을 잃고 나서야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쳐왔다. 이제는 사후 약방문식 대처가 아니라, 죽음 뒤에 숨겨진 구조적 결함을 먼저 찾아내는 능동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동사망검토제도는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존중하는 길이며,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굳은 사회적 약속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