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도망' 나상천 "벼랑 끝 한 발 내딛자 솟아난 날개" [인터뷰M]

"벼랑 끝이었어요. 끝인 줄 알고 한 발 내딛으니 날개가 솟아나 더 멀리 날아오를 동력을 얻었죠."



iMBC 연예뉴스 사진

K팝 제작 최전선에서 걸스데이와 모모랜드를 탄생시킨 기획자 나상천이 장편소설 '어느 멋진 도망'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위로,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과해온 상실과 회복의 시간을 한 권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어느 멋진 도망'은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각자의 상처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서로를 만나며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아내를 잃고 무너진 요리사를 중심으로 싱어송라이터, 댄서, 대학생, 유튜버 등 다양한 인물의 사연이 교차하며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은 출간 직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부랴부랴 2쇄를 찍어내고 교보문고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입소문을 탔다. 이와 관련 나상천은 iMBC연예와 만나 "출판사에서도 2~3개월 뒤쯤 2쇄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연락이 왔다.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고 웃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습작도 꾸준히 해왔지만, 본격적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 계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나상천은 "순례길을 두 번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 길에서 엄청난 힘을 얻었다"며 "그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는데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딸이 '고생했네, 됐어'라고 하더라. 너무 뻔하게 들렸던 거다. 그래서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딸에게 들려주려면 뮤지컬처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소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대본이었다. 그는 "처음엔 대본만 쓰려고 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배우들이 인물과 상황을 이해하려면 더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더라. 그래서 시놉시스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결국 소설까지 완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품 곳곳에는 나상천의 실제 삶이 깊게 배어 있다. 특히 연이은 상실의 시간은 이 소설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그는 2017년 아내와 사별했고, 곧이어 어머니까지 떠나보냈다.

나상천은 "연달아 상실을 겪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공황과 불면도 계속됐다"며 "그런데 이상하게 일은 계속 잘됐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속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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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웠던 건 어린 딸이었다. 그는 "'나까지 잘못되면 아이가 고아가 되겠구나'라는 공포가 계속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굉장히 컸다"며 "그때 처음으로 돈과 성공이 다가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끈 건 업계 선배의 권유였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업을 내려놓고 한 달 넘게 길을 걷는다는 것이 당시의 그에게는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가 제 상태를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저는 제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도 잘 몰랐다."

순례길 초반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은 힘들었고 마음은 더 지쳐 있었다. 실제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 길 위에서 만난 스페인 노부부의 말이 전환점이 됐다.

"그분들이 '누구 눈치 보지 말고 너만 생각하며 걸어보라'고 하셨다. 그전까지는 늘 주변 시선만 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진짜 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발에 물집이 잡혔을 때 파스를 건네준 사람, 몸이 아프다고 하자 약을 내민 사람, 말없이 곁을 내준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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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천은 "그 사람들이 다 천사처럼 느껴졌다. 내가 혼자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며 "순례길을 다녀온 뒤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멋진 도망'을 "인생 2막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제목 속 '도망' 역시 패배나 회피의 의미만은 아니다. 멈추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순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잠시 벗어나는 선택에 가깝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시간도 그의 글쓰기에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나상천은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했고, 이후 잡지 기자와 음악 플랫폼 업계를 거쳐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들어왔다. 걸스데이와 모모랜드 제작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의 서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멤버들의 실제 이야기와 감정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껍데기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람의 히스토리를 알아야 방향도 보인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원래 꿈은 글쓰기였다. 나상천은 "어릴 때 정말 가난했다. 쌀이 없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 쓰는 꿈은 포기 못 하겠더라"고 돌아봤다.

이어 "현실 때문에 대중문화 업계로 왔지만, 그 경험들이 결국 지금의 글쓰기로 이어진 것 같다. 대중이 어떤 감정에 움직이는지를 고민했던 시간들이 지금도 큰 자양분이 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나상천은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다시 날아오르는 시작이었다. '도망'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가끔 멈춰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결국 무너지기도 한다"며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잠깐 숨 고를 수 있는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출처 꿈의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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