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서 4.5조 장전한 현대차, ‘엘리트 두뇌’ 손잡고 EV 판도 흔드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24년 인도 뉴델리 총리관저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24년 인도 뉴델리 총리관저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가 인도 증시 기업공개(IPO)로 확보한 4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발판 삼아, 현지 ‘물적·인적 생태계 동시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 투자를 넘어 인도 정부의 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 국가 표준 제정까지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인도에서 가성비 모델만으로는 장기적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인도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 선점을 위해 지난해 현지에 설립한 ‘현대 미래 모빌리티 혁신센터(Hyundai CoE)’의 산학 연구 체계를 현지 주요 공과대학 7곳(인도공과대학교(IIT) 델리, IIT 봄베이, IIT 마드라스, IIT 하이데라바드, IIT 칸푸르, 비스베스바라야 국립공과대학교(VNIT) 나그푸르, 테즈푸르 대학교)으로 확대하며 기술 동맹 강화에 나섰다.

이번 학계 연합 구축은 지난 2024년 10월 상장을 통해 확보한 4조5000억원의 재원이 하드웨어 공장 증설에 대거 투입되는 흐름과 맞물린 행보다. 

향후 가동될 생산 라인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현지 엔지니어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차원의 인프라 연계 투자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상장 이후 공모 자금을 순차적으로 투입한 현대차는 인도 푸네 공장의 1차 가동(연산 17만 대)을 성공적으로 개시한 데 이어, 오는 2028년 연산 25만 대 체제 완성을 위한 최종 라인을 정비 중이다.

인도 첸나이 공장에서는 하이브리드카와 차세대 전기차(EV) 신차 생산을 목표로 설비 개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장으로 조달한 거대 인프라 자금 가동에 발맞춰 이번 인도 학계와 협력에도 별도의 R&D 예산을 편성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 R&D 및 소프트웨어(SDV) 실무진은 확대된 연구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배터리 신소재 연구, 현지 기후 특화형 배터리 설계, 인공지능(AI) 기반 전기차-전력망 연계(V2G) 플랫폼 개발 등 총 39건의 산학 연구 과제 가동을 위한 세부 타임라인 수립에 착수했다.

현대차는 인도자동차공업협회(SIAM) 집계 기준으로 올해 1분기 합산 판매량 25만903대를 기록하며 사상 첫 분기 판매 25만 대 돌파와 함께 현지 시장 2위를 탈환했다.

이러한 브랜드 파워를 발판 삼아 전기차 패러다임 전환기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타타(Tata) 모터스 등 현지 주자들과의 격차를 벌릴 방침이다.

인도 학계와 공동 기획한 39개 프로젝트의 실행 방안과 상생 로드맵은 다음 달 예정된 인도 7개 대학 학장단 및 교수진의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등 방문을 기점으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번 협업 프로젝트는 과거 한국 본사의 완성된 기술을 단순 이식하거나, 단발성 부품 외주에 그치던 기존 산학협력과는 명확히 차별화된다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한국의 기술 자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도 현지 연구진이 수집한 기후·도로 데이터와 아이디어를 설계 초기 단계부터 반영해 ‘인도 맞춤형 기술’을 공동 구현하겠다는 대전략이 깔린 것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다음 달 인도 학계의 방한 시점에 맞춰 대규모 기술정책 간담회를 동시 개최하고, 이 자리에 인도 정부 및 연구기관 관계자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이번 학계 협력을 통해 도출될 AI 기반 전력망 연계(V2G) 등의 핵심 연구 성과를 인도 정부에 국가 표준안으로 선제 제시함으로써, 법적·제도적 진입장벽을 다지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나선다.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략 싸움이 한창이다.

현지 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 마루티 스즈키는 인도의 열악한 충전 인프라를 고려해 외부 충전이 필요 없고 연비가 높은 하이브리드카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SUV 빅토리스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한 데 이어 내년까지 프롱크스, 발레노, 스위프트 등 소형차 라인업 대부분을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 대폭 전환할 예정이다.

반면 현대차는 지난해 1월 브랜드 최초의 인도 현지 생산 전기차인 크레타 일렉트릭을 공식 출시하며 전동화 시장 선점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주도권을 굳히기 위해 현대 미래 모빌리티 혁신센터의 산학 연구 체계를 인도 주요 대학으로 대폭 확대하며 독자적인 기술 동맹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학문적 이론과 원천 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인도 학계와, 시장성 있는 양산 기술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대차 간의 간극을 좁히는 게 급선무라는 평가가 있다.

인도 관료주의에 따른 행정 규제와 승인 지연, 산학 협력 과정에서의 기술 유출 리스크 등도 변수로 거론된다. 

국내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인도는 내수 업체들의 저가 공세도 거세고 소득 수준 향상으로 소비자들이 고부가가치 차량을 찾고 있어 기술적 우위를 가져가는 게 중요한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도는 인재 빼앗기 경쟁이 심해지고 있고 핵심 기술 유출 우려도 안고 있다”면서 “인도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현대차가 위험을 감수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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