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살리기’ 공약이 쏟아진다. 변방에 대한 ‘반짝’ 관심이다. 지방소멸은 왜곡된 표현이다. 지역이 잘못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정치가 방치한 지역불균형 탓이다. 여기, 2026년 ‘전환’을 맞이한 지역이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이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해, 산업 재편과 인구감소 위기에 처했다. 기자 셋이 태안을 오가며 201명을 인터뷰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태안이지만, 소외된 지역 모두의 이야기다.
바닷가 작은 마을,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는 원래 섬이었다. 조개를 캐면 1년에 몇천만원을 벌 수 있어 ‘황금의 섬’이라 불렸다. 서해인데도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다워, 펜션이 많다. 지금은 “할매들만 남았”다. 마을 152가구 중 81가구에 노인 혼자 산다. 조개가 폐사해 관광객도 줄었다. 2011년 개통한 연륙교를 건너 하루 열대의 버스가 다닌다. 다섯번은 태안읍, 다섯번은 안면읍을 오가는 농어촌버스다. 태안읍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1시간가량 달리면 종점인 황도리에 도착한다.
버스가 아니라도 시골살이는 불편하다. 집 근처에 병의원도, 약국도, 이·미용실도 찾아보기 힘들다. 면 단위에서는 인구가 일정 수 아래로 줄어들면 의원(2685명), 약국(2604명), 이·미용실(1531명)이 사라져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된다. 인구가 감소하는 면 612곳에서 시설이 폐업할 때의 ‘임계 인구’를 계산한 결과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태안군도 태안읍·안면읍에 인구 60.5%가 산다. 이원면·고남면이 2천명대이고, 남면이 4천명대다. 이미 면 6곳 중 4곳에 병의원이 없다. 일상을 유지하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마을에는 운전이 힘든 노인들만 산다. 그래서 시골 버스를 타면, 노인이 많다. 태안읍과 황도리를 오가는 실제 버스 노선의 정류장마다, 태안에서 만난 주민들이 겪는 일상의 어려움을 엮어 기사를 재구성했다.

버스 종점, 황도리
지난달 30일 오전 9시, 버스가 황도리 종점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10분을 걸어가면, 작은 언덕 위에 황도리보건진료소가 있다. 오전 9시20분, “할매들” 중 하나인 여든다섯 양만례가 제집처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지러워서 왔어. 어제 승언리 목욕탕 다녀온 뒤부터 머리 아프고 눈도 뜨기 싫여.” 여섯 남매를 둔 양만례는 혼자 산다. 김현미(51) 보건진료소장이 다정스레 팔을 감싸며 혈압을 쟀다. “잘 드셔야 해요. 동네에 영양실조 있는 두분이 계시잖아요. 아주머니랑 봉열 어머님이랑.” 한시간 뒤, 여든일곱 전남희가 두 사람의 ‘이야기 마당’에 합세했다. “나 염색할 건데 약 좀 줘.” “염색약 때문에 이마에 물집 잡히는 어르신이 마을에 세분 계세요.” 김현미는 마을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다.
김현미는 19년째 이 마을에서 일한다. 마을의 막내다. 50대가 셋뿐이다. 여기서 아들 둘을 키웠다. 큰아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근처 창기중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4년 전 태안읍으로 이사했다. 그 전엔 진료소랑 방문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관사에 살며 24시간 마을을 돌봤다. “새벽 서너시에 지네에 물렸다며 전화가 와요. 달려가면 고열이에요.” 파킨슨병을 앓는 어르신한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1년간 드레싱 해드렸더니, 눈감기 전에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소장, 고마워.” 어촌 마을이라 “생선 손질하다가 손가락 마디 하나” “그물을 감는 롤러에 다리 하나” 잘려 나가는 사고가 흔하다. 김현미는 생각한다. “도시는 문만 열고 나가면 다 병원이지만, 시골에 우리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보건진료소는 마을 사랑방이자, 마을의 유일한 행정기관이다. 주민을 대신해 어촌계에 팩스로 서류도 보내준다.

의료취약지에 설치하는 보건진료소의 소장은 보통 간호사가 맡는다. 만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40%에 이르는 태안에는 보건진료소 16곳이 있다. “열명 중 여섯이 노인인 초고령 마을이라, 편찮은 어르신을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로 보내야 할지 알아보는”(김승종 신두리보건진료소장) 일까지 맡는다. 보건진료소보다 조금 인구가 많은 지역에 설치된 보건지소 6곳에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상주한다. 하지만 진료를 격일로 본다. 공보의 1명이 보건지소 2곳을 맡아, 하루씩 나눠 진료하는 탓이다. 올해는 신규 공보의가 지난해(250명)의 40% 수준인 98명 들어오는 데 그쳐, 전국적으로 ‘공보의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태안에서는 지난달 9일 공보의 7명이 전역하고, 6명이 충원됐다.
지역에는 공보의뿐 아니라 의사가 드물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충남 2.4명, 경북 2.26명으로 서울(4.67명)에 견줘 크게 낮다. 그래서 태안보건의료원은 주민을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보의 한의사 6명이 돌아가며 경로당 230곳을 방문해 침을 놔주고, 혈압·당뇨 측정을 해주는 사업이다. 지난달 3일에는 남면에서 행사가 열렸다.

장군벌(진산2리) 정류장
황도리행 버스는 태안 출발 13분 뒤에, 남면 장군벌 정류장에 선다. 여든둘 조정자가 지난해 겨울, 버스에서 내리다가 넘어진 곳이다. “계단 하나만 내려가면 땅바닥인디, 나도 모르게 코가 엎어졌어.” 그때 다친 어깨는 아직도 욱신거린다. 조정자는 남면 진산리 ‘감나무집’에 홀로 산다. 수도권에 사는 자식들은 주말에 내려와 농사일을 돕는다. 평생 농사를 지어 “허리가 꼬부라져” 혼자 걷기 힘들다. 막내아들이 120만원짜리 전동 밀차를 사 줬다. 성인이 타도 될 만큼 큼지막하다. 이걸 끌고 언덕 아래 논에도 가고, 15분가량 걸어 나가야 하는 버스 정류장도 오간다. “아무도 안 훔쳐가”니, 밀차는 정류장에 버려두고 갔다가, 버스에서 내려 돌아올 때 다시 밀고 언덕을 올라온다.
보따리가 클 땐, 개인택시 기사인 김진용(66)에게 전화를 건다. 지난달 16일 아침, 조정자는 15~20㎏짜리 마대 일곱자루를 택시에 싣고, 남면 농협에 볍씨 열탕 소독을 하러 갔다. 무거운 자루는 김진용이 트렁크에 다 싣고 내려줬다. 볍씨를 소독해야 벼가 웃자라는 ‘키다리병’에 걸리지 않는다. 택시비는 태안군에서 낸다. 2022년부터 태안군에서 운영하는 ‘희망택시’ 사업이다. 80살 이상 노인 가운데 집에 차량이 없고, 버스 정류장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살면 연간 40건 이내에서 이용할 수 있다. 태안뿐 아니라 충남 서천군의 ‘100원 택시’, 강원도의 ‘희망택시’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제정해 취약한 교통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태안군에서는 지난해 노인 728명이 희망택시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지원 대상은 80살 이상 노인 전체 인구의 12%가량에 그친다.

고남면에 사는 일흔 정금희(가명)는 지난 3월 남편을 잃었다. 남편(73)이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아” 일어난 사고였다. 장화를 신고 있던 게 문제였을까, 짐작만 한다. 그 뒤로 그는 “가슴이 떨려” 자동차 운전을 못 한다. 그런데 막상 버스를 타자니 불편하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볼펜으로 대충 수정한 시간표를 가리키며 정금희는 “시간표도 알아보기 힘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쪽다리(달산3리) 정류장
남면 달산포해수욕장 근처 펜션에 아들과 함께 사는 서부월(91)은 지난달 17일 아침 김진용에게 전화를 걸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치과에 가야 하는데, 예약 시간을 모르겠어.” 김진용이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오전 11시 예약을 확인하고 서부월을 태우러 갔다. 틀니를 끼고 있는 서부월은 이가 아파서, 죽만 먹는다. 버스를 혼자 탈 수도 없다.
소원면에 사는 이금산(89)도 ‘희망택시’ 단골이다. “허리가 시원찮아서 혼자 걸어서 못 다닌”다. 지팡이를 짚고 김진용이 부축해야 겨우 걷는다. 이날 아침, 이금산은 아침 일찍 여는 태안읍 내 미용실에 “머리 지지러” 가기 위해 희망택시를 불렀다. “쑥이 천지여.” 나가는 길에 미용실 앞 방앗간에 맡길 쑥과 빻은 쌀도 조금 챙겼다. 3만원만 내면 ‘빠마’ 비용도, 미용실 원장이 해주는 점심밥으로 끼니도 해결된다. 김진용의 희망택시 손님 절반은 미용실, 절반은 병원에 간다.
노인들에게 희망택시는 때론 ‘비서’, 때론 ‘배달앱’이 되어준다. 이금산은 가끔 좋아하는 “튀긴 닭”(치킨)을 먹고 싶을 때면 김진용에게 전화한다. 왕복 택시비를 받고 김진용이 시장에 들러 치킨 한마리를 사다 나른다. 이금산의 부엌에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육개장, 미역국 등 간편식이 가득하다. 식료품 살 곳이 마땅치 않고, 시장 나가기도 힘드니 멀리 사는 자식들이 택배로 보내준 음식이다. “2년 전엔 아침 일찍 ‘병원 데려가달라’고 전화하셨더라고요.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신다고. 제가 와서 119 구급차를 불러드렸어요.”(김진용) ‘빠마’를 마친 희망택시 손님을 집에 데려다주는 오후 2시45분, 서부월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를 뽑은 자리에서 계속 피가 흘러. 병원 안 가봐도 되나.” 멀리 있는 자식보다, 빈집이 많은 이웃보다 김진용이 노인들에겐 더 든든하다.

태안읍 공용버스터미널
“할매들”이 가끔 타는 버스는 모두 읍내 공용버스터미널에 모인다. 태안읍에 있는 병의원 24곳도 대부분 옛 버스터미널과 새로 지은 공용버스터미널 근처에 몰려 있다. 매일 아침 6~7시 서울로 가는 버스는 항상 매진이다. 대형병원에 가는 노인들 때문이다. 교통 편의와 의료 취약 문제는 맞닿아 있다. “교육, 의료 문제 때문에 서부발전 직원들도 다 여기 안 살려고”(서부발전 직원 가족) 한다. “의사들도 케이티엑스(KTX)가 서지 않는 지방의료원 근무는 안 하려고 해서 서산, 태안에선 천안 같은 곳보다 월급을 더 많이 줘야”(김영완 서산의료원장) 한다.
태안에서 가장 큰 병원인 태안보건의료원은 24시간 응급실이 있고 소아과·산부인과·외과 등 전문진료를 볼 수 있지만, 읍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전국 보건의료원 16곳 가운데 페이닥터(봉직의)가 제일 많고 앞서가지만,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 입장에선 ‘미운 오리 새끼’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당하죠.”(태안보건의료원 공무원) 보건의료원은 ‘병원화된 보건소’다. 그런데 주민들은 인근 서산의료원과 같은 지방의료원급의 서비스를 원한다. 지난해 서산의료원 외래 환자의 20.4%는 태안군 주민이었다.
“아파도 갈 병원이 없는데 누가 시골에 살겠냐.” 응급실 체계 마련 등 14년 동안 태안 지역 공공의료를 책임졌던 허종일 전 태안보건의료원장은 “의료가 받쳐주지 않으면 지역균형발전은 없다”고 말한다. 병의원만이 아니다. 보건소, 버스, 우체국, 학교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지켜야, 지역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미용실, 목욕탕 같은 서비스 시설은 먹고사는 데 결정적이진 않다. 하지만 일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지역이 ‘일상의 불편’을 참고 살아야 하는 곳이 되지 않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
밤 9시 무렵이면, 태안에서 가장 번화한 공용버스터미널 근처가 한적해진다.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택시들은 길게 늘어서 있는데, 사람의 발길이 드물다. 태안읍에서 마을로 출발하는 농어촌버스가 끊기는 탓이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막차 시간은 저녁 예닐곱시, 늦어봤자 저녁 8시다.
태안(충남)=황예랑 손고운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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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리팀> 취재: 류석우 손고운 황예랑 송상호 / 사진: 최현수 / 영상: 한해나 / 디지털 인터랙티브: 김경훈 안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