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2년 연속 흑자 달성…올해 현대화 마무리

필리핀 수도 마닐라(메트로마닐라)에서 북동쪽 약 60km 떨어진 ‘앙갓댐(Angat Dam)’으로 향하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고유가에도 교통체증은 여전했고 중심가를 벗어날수록 도로도 나빠졌다. 이동 차량이 흔들릴 때마다 관성적으로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을 보다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나마 체감온도 44도에 달하는 불볕더위를 차 안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2시간 남짓 달렸을까. 불라칸주 앙갓호 초입의 높이 131m, 길이 568m 앙갓댐이 에메랄드빛 물결과 울창한 숲 사이에서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우기(雨期) 전 낮아진 수위에 맨살을 살짝 드러낸 사면은 마치 휴양지 해변가를 연상케 했다.
1967년 준공된 앙갓댐은 인구 1400만명 규모의 마닐라 생활용수를 90% 이상 책임진다. 총저수용량은 8억5000만㎥. 소양강댐(200MW)을 뛰어넘는 254.4메가와트(MW)급 수력발전을 통해 필리핀 수도권 전력까지 담당하는 국가기간시설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4년부터 10년 넘게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필리핀 전력자산관리공사(PSALM)는 준공 반세기가 지나 노후화한 2010년 앙갓 수력발전소와 댐 운영권을 매물로 내놨다. 국제입찰에 나선 수자원공사는 4억4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5100억원)를 들여 앙갓댐 장기 사업권을 따냈다. 국내 물기업이 해외 다목적댐을 인수한 최초 사례다.

금융비 등을 합한 앙갓댐 사업 총비용은 4억8000만달러. 계약기간은 2039년까지 25년이다. 25년 추가 연장이 가능해 2064년까지 운영할 수 있다. 수자원공사는 특수목적법인(SPC) 앙갓하이드로파워코퍼레이션(AHC)을 설립해 지분 40%를 갖고 앙갓댐 운영을 총괄한다. 직원 4명이 AHC 소속으로 파견근무 중이다. 현지법상 국가기간시설은 외국 기업 지분이 40%를 넘을 수 없다. 현지 기업 산미구엘의 산하 산미구엘글로벌파워에 지분 60%를 갖고 있다. 산미구엘은 재무·법률·조달 등 행정 부문을, 수자원공사는 댐 및 설비운영 등 기술 부문으로 나눠 각자 역할을 수행한다.
수자원공사는 앙갓댐을 즉각 수술대에 올렸다. 2015~2018년 앙갓댐 보강공사(211억원)를 거쳐 2020년 주발전기 1~4호기·보조발전기 1~3호기 등 발전설비 현대화 사업(553억원), 2021년 보조 4·5호기 통합운영 사업(230억원)을 각각 시작해 올해 대부분 마쳤다. 현대화 작업을 거쳐 발전용량은 기존 218MW에서 226.4MW로 늘어났다. 화재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28MW급 보조 4·5호기 위탁운영권도 마닐라 상하수도청(MWSS)으로부터 인수 후 수력발전을 본격화했다.

안전모 착용 후 녹색 페인트로 도색된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 9층 규모의 수력발전소 안으로 들어가자 습한 기운과 함께 주발전기 1~4호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우우웅'하는 발전기 소리가 귀를 찔렀다. 연내 최종 조립 작업만 남겨둔 주2호기를 제외한 모든 발전기의 현대화 작업은 끝난 상태였다. 컴퓨터 10여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지하 5층 중앙제어실에는 현지 직원 4명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구제어실, 보조발전기와 배수시설 등이 있다.
앙갓댐은 현대화 사업 전인 2015~2023년 평균 발전량 340GWh, 발전매출 377억원이었지만 올해 발전량 471GWh, 매출 600억원대가 예상된다. 특히 현대화 전 발전 없이 버려지는 '무효방류'가 27CMS(초당방류량·초당 27t의 물이 버려진다는 의미)에 달했지만 발전설비 고도화를 통해 올해부터 무효방류 제로(0)를 달성했다. 쉽게 말해 하루에 그냥 버려지던 물 230만t을 모두 발전방류로 전환한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220억원 수준이다.

특히 MWSS가 약 200억원을 들여 보조 4·5호기를 수리했다면 필리핀이 연간 100억원 이상의 발전매출을 올릴 수 있었지만 재원 확보의 한계로 장기간 활용되지 않았다. 이에 수자원공사가 2021년 운영 계약을 통해 수리·가동하면서 보조 4·5호기 발전 매출을 고정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현장에서 11일 만난 구민철 AHC 유지보수팀장은 "필리핀뿐 아니라 동남아의 많은 기간시설이 낡아 현대화할 시점이 도래했지만 자본이 부족해 외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수공의 꾸준한 기술개선 노력과 운영효율화를 통해 외국에서 수익을 낼 수 있어 좋고 필리핀도 한동안 돌릴 수 없던 설비를 외자로 복구하고 수익도 얻으니 나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앙갓댐은 작년 발전매출 623억원, 순이익 200억원으로 2년 연속 흑자,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각각 전년대비 매출 114%, 순이익 15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수자원공사의 앙갓댐 사업 누적이익 예상치는 2064년까지 약 8700억원이다. 산미구엘 지분(60%)까지 반영하면 2조원을 훌쩍 넘긴다. 오랜 기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막대한 돈을 떠내려보내온 댐을 고쳐낸 한국의 물기술이 결과적으로 양국에 상당한 부를 안겨주게 된 것이다.

앙갓댐 사업은 단순 해외 수익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첨단 'K-물관리' 모델을 필리핀에 이식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수자원공사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축적한 물관리 기술과 앙갓댐 사업 과정에서 얻어낸 노하우를 토대로 △불라칸 광역상수도 사업(총사업비 2000억원) △뉴클락시티 상하수도 사업(3569억원) △마닐라 해수담수화(2000억원)·파사이360 물관리시설 구축 사업(2000억원) 등 필리핀의 각종 '메가 물프로젝트'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앙갓댐 수익 일부를 댐 인근의 낙후된 학교·병원과 같은 필수시설 노후장비 개선, 물품 지원에 쓰는 등 사회공헌활동도 병행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는 태양광발전도 무상으로 깔아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한국 위상을 높이고 있다.
김성진 AHC 댐운영팀장은 "앙갓댐은 용수·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필리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시설"이라며 "한국이 운영을 맡은 후 필리핀 정부기관부터 민간까지 파트너십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고 현지 신규사업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