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9일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사태 발생 경위 조사와 의사결정 시스템 재점검, 본인을 포함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역사·윤리 교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사과문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계열사의 의사결정 과정과 임직원의 역사인식 부족 문제로 한정시키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그동안 정 회장이 보여온 극우적 언행과 무관한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인 지난 18일 ‘탱크 시리즈’ 텀블러 판매 행사를 시작하며, ‘탱크데이’라는 표현과 ‘5/18’이라는 날짜,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홍보에 사용했다. 마치 극우 성향 사이트인 ‘일베’식 게시물을 보는 듯하다. 정상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이를 보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 진압과 치안본부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피맺힌 역사를 상업 마케팅의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런 게시물이 기획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누리집에 게시되기까지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베식 놀이를 당연시하는 정서가 회사 전체 조직문화에 깊게 배어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정 회장은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책을 내놨다. 그러나 의사결정 시스템을 점검하고, 임직원에게 역사 교육을 시킨다고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이다. 한국의 재벌 체제에서 총수는 임직원들에게 거의 절대적 존재로 여겨지며, 총수의 인식과 태도가 전반적인 조직문화와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멸공’ 시리즈 등 극우적 세계관을 거리낌없이 드러내온 정 회장의 정치적·이념적 메시지가 누적되며 조직 내부에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책임을 계열사 경영진과 실무선의 일탈, 임직원의 역사인식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 회장의 역사인식과 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 회장은 형식적 사과와 제도 개선 약속을 넘어, 이번 사태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언행과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