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이 잡념잡상 _28 술도가 ‘예술’ 정회철 (상)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닌데 우연히 빚게 됐어요. 인연이 닿으면 파고듭니다. 독학해서 익힌 대로 누룩을 사다가 전통주를 만들어 보니, 술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던가, 그때 처음 알았지요. 술은 정성을 다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누룩을 빚고 기다리고, 술을 담고 기다리고. 정성은 사람의 일이고, 시간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해요. 닷새도 안 지난 것을 어찌 술이라 하겠습니까?

조선 중기 진묵 스님이 술을 좋아했다. 주량은 말술이었고, 안주로 새우젓을 즐겨 먹었다. 하루는 제자가 술은 계율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이것은 술이 아니라 곡차이니라”라고 답했다. 스님이 어찌 비린 것을 즐겨 자시냐고 재차 묻자 “중생을 제도하려면 짠맛도 알아야지”라고 응수했다 한다.
절집에서 술을 마시려면 저 정도 능청과 동문서답의 논리는 있어야 한다. 불음주(不飮酒) 계율을 슬쩍 비켜서는 ‘곡차’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곡차는 ‘곡’(穀)이나 ‘곡’(麯)을 쓴다. 앞은 곡식이고, 뒤는 누룩이다. 둘을 섞어 물에 담그면 술이다.
누룩은 술의 어머니다. 누릇누릇해서 누룩이고, 꾹꾹 눌렀다 해서 누룩이다. 먼저 통밀을 거칠게 빻아 끓여 식힌 물에 섞어 반죽한다. 둥글거나 네모나게 모양을 잡아 천으로 싸맨 뒤에 틀에 넣고 발로 밟는다. 지금도 부산 ‘금정산성’ 누룩은 할머니들이 버선발로 이겨서 빚는다. 그것을 누룩 방에 넣어 밑에 볏짚을 깔고 온도 30도쯤, 습도 60%쯤 하여 한달을 띄운다.
이때가 축제다. 동네 사는 온갖 미생물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 시간. 들에 숲에 강에, 마당과 헛간에 그리고 바람 속에, 살아 있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손님이다. 누룩은 한자로 ‘곡’(麯)이나 ‘국’(麴)을 쓴다. 같은 말인데 쓰임에 따라 뒤에 뜻이 나뉘었다. ‘곡’은 날것을, ‘국’은 찐쌀을 쓴다. ‘곡’은 자생 곰팡이가 있는 자연 접종이고, ‘국’은 배양 곰팡이를 따로 넣는 인공 접종이다. 말하자면 ‘곡’은 자연산이고 ‘국’은 양식인 셈인데, 우리 전통 누룩이 ‘곡’이고, 일본에서 유래한 개량 누룩이 ‘국’이다.
화엄경에 ‘수연무작’(隨緣無作)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 따라 흐르는 것이지, 따로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곡’은 사람 손을 안 탔으니 ‘무작’이고, ‘국’은 사람 손을 거쳐 ‘작위’라 할만하다. ‘곡’은 자연이 주는 그대로 감탄할 만한 풍미가 있지만 야생 잡종처럼 다루기가 어렵고 술맛도 제멋대로다. ‘국’은 배양균을 넣어 다양한 풍미가 떨어지나 길들인 순종처럼 술 빚기가 쉽고 술맛이 일정하다. 둘은 장단이 있지, 우열은 아니다. 식구들끼리 먹기에는 ‘곡’이 좋고, 내다 팔기에는 ‘국’이 나을 것이다. 옛날 한 집 건너 빚었던 가양주가 오만가지 ‘떼루아’(terroir)를 갖는 것은 ‘곡’의 작용이고, 어느 종가의 씨간장 한 항아리가 1억원에 팔렸다는 얘기는 ‘국’의 작용이다. 여하튼 누룩이 뜨는 저 한달은 사람의 손을 떠난 시간, 당골네가 접신하는 그런 대목이 아닐까 싶다.
정회철(64), 술도가 ‘예술’의 대표다. 경춘선 타고 가다 김유정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있다. ‘예술’은 단술 ‘예’(醴)에 ‘술’을 합친 이름. 샘물이 술처럼 달다는 동네가 경북 ‘예천’(醴泉)이다. 2012년 강원도 홍천에 술도가를 열었다가 지금 자리로 옮긴 지 5년 됐다. 금병산이 감싸 안은 이 동네는 ‘김유정문학촌’도 있고, 주변에 도서 인쇄박물관도 있어 두루 둘러보다가 여기 들르면 공술 한잔은 얻어 마실 수 있다.
정회철의 고향은 전북 군산이고, 서울 미아리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전기 통신 사업을 크게 하다가 사기를 당해 쫄딱 망했다. 빚쟁이들을 피해 트럭 타고 야반도주해서 신림동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다. 검사에게 사람 취급을 못 받은 아버지 한을 풀기 위해 1981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2학년 때 제적됐다. 군대 끌려갔다가 제대하고, 용접 2급 자격증을 땄다. 1987년 경기 안산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직했다. 일당 600원 인상을 놓고 노사협상은 한정 없이 길어졌다. 그는 어용 노조를 대체할 비상대책위를 조직했다. 위원장을 맡아 파업을 주도했다. 광명 경찰에 체포되어 봉고차 안에서 쇠파이프로 엄청 맞았다. 이때 ‘하이바’(헬멧)를 씌우고 때린다. 외상은 없이 속으로 멍들게 하는 잔혹한 수법이다. 경찰은 때리고, 검찰은 겁주다 어르는 척 기소한다. 판사는 징역 3년 집행유예 2년을 때렸다. 해고 이후 평택노동상담소장으로 노동자 법률 상담을 했다. 그즈음 운동판 동지 조인숙(60)씨와 혼인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시국 관련 제적 대학생 전원의 학적을 회복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그는 1982년 전두환 때 제적되었다가 12년이 흘러 캠퍼스로 돌아왔다. 처자식이 있는 대학생은 상도동 달동네 맨 윗집에 살았다. 눈 내린 날 허연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온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그 가난의 꼭대기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아내는 토종꿀을 중개해서 팔고, 바느질 일거리를 맡아 월 60만원을 벌었다. 졸업 이듬해인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연수원 성적이 좋아 판사를 지망했으나 ‘전과’가 발목을 잡았다. 법무법인에 첫 출근 했다. 민사 서류 뭉텅이를 주면서 이튿날 법정에 나가라 하니, 그날 퇴근길에 사표를 던졌다. 평생 진짜 ‘변호사’ 일은 딱 하루 했다.
“검사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고, 판사는 뜻대로 안 되고, 변호사는 절반이 장사예요. 사실 저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지, 법조 체질이 아닙니다. 할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책을 썼어요. 당시 신림동에는 사시를 포함한 공시생이 3만여명에 달했습니다. 처음에 평지에 살다가 합격한 사람은 빠져나가고, 재수 삼수 사수 하면서 점점 언덕 위로 올라갑니다. 윤석열씨 같이 팔수 구수 한 사람들이 방값이 제일 싼 꼭대기에 살고요. 그러다 못 내려오면 폐인이 되고 그러지요. 헌법 수험서를 썼어요. 헌법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민중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의 기준을 잡아주어야 하는가 그런 것, 노동 현장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썼지요. 책이 제법 팔리더라고요.”
헌법은 시험의 감초라, 빠진 데가 없다. 여기서 대박이 났다. ‘기본강의 헌법’과 ‘판례강의 헌법’, 이 두 책은 ‘성문 영어’ ‘수학 정석’ 하듯이 ‘헌법 정석’으로 통한다. 수험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게 된다. 학원 여기저기서 저자 직강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헌법 일타 강사로 신림동 바닥을 평정했다. 부인이 도서 출판 ‘여산’을 차려, 제작 공급을 독점했다. 책 10만여권이 나갔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면 몸에 무리가 온다. 그는 2006년 44살, 충남대 로스쿨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몸 쓰는 일을 병행하려고 목공을 배웠다. 땀 흘리면 당기는 것이 술이라, 이때 집에서 술을 빚었다.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닌데 우연히 빚게 됐어요. 인연이 닿으면 파고듭니다. 독학해서 익힌 대로 누룩을 사다가 전통주를 만들어 보니, 술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던가, 그때 처음 알았지요. 시중에 파는 술과는 차원이 달라요. 술은 정성을 다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누룩을 빚고 기다리고, 술을 담고 기다리고. 정성은 사람의 일이고, 시간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해요. 닷새도 안 지난 것을 어찌 술이라 하겠습니까?”
술이 익으면 보통 13도다. 독에 용수(대로 만든 고깔 모양의 체)를 꽂아 두었다가 맑은 청주를 떠낸다. 남은 것을 막 걸러 너무 물컹하면 물을 좀 타기도 해서 휘휘 저어 흐린 탁주를 빚는다. 양이 적은 청주는 교수들과 나눠 마시고, 탁주는 학생들하고 나눠 마셨다. 마시는 사람마다 술맛 좋다고 감탄을 쏟아냈다. 전통주가 시중 막걸리에 비할 바 아니고, 술은 얻어 마시는 사람이 “캬~” 소리를 내며 으뜸이라고 추켜세우기 마련인데, 정 대표는 이 대목에서 자기가 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즈음 전문가 과정인 ‘한국전통주연구소’에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술 수업을 받았다.
강의하랴, 목공 하랴, 술 빚으랴, 하루 4시간 자고 일하다 보니, 병은 아닌데 몸이 자꾸 시들시들했다. 2년 못 채우고 충남대를 사직했다. 목공도 밀쳐 두고, 오직 술에 전념했다.
그는 2012년 강원도 홍천 내촌면 물걸리에 ‘전통주조 예술’을 창업했다. ‘법’으로 살았던 인생 전반이 흘러가고, 이제 ‘술’로 사는 후반으로 들어간다. 술 익을 때 항아리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소리, 그것은 가락이기도 하며, 술이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그는 말했다.
정회철 대표는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증류주 품평회 ‘제27회 스피릿츠 셀렉션’에 ‘무작 53’을 출품하여, 소주 부문 대상인 ‘그랑골드’를 거머쥐었다. 여태 우리 술이 세계 무대에서 받은 제일 큰 상이다. ‘53’은 알코올 도수이고, ‘무작’은 ‘곡’(麯)을 빚을 때, 인연 따라 흐르되 따로 짓지 않는다는 수연무작의 그 ‘무작’(無作)에서 따왔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