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동절’…잊힌 ‘돌봄’을 떠올리다 [세상읽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 노동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희강 | 고려대 교수(행정학)

5월1일은 63년 만에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날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념식 단상에 올라 일터의 안전과 노동 기본권을 약속했다. 분명 이는 우리 사회가 거둔 값진 진전이었다. 순응과 동원의 언어였던 ‘근로’ 대신, 권리의 주체를 담은 ‘노동’이라는 이름을 돌려주는 일은 그동안 지워졌던 존재들을 인정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연설문을 보다 ‘노동’을 ‘돌봄’으로 바꿔보았다. “우리는 돌봄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돌봄을 통해 삶을 바꾸며, 돌봄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갑니다.”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잘 읽힌다. 그 사실이 오히려 우리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가리킨다.

노동이 세상을 움직이고 발전시켜왔다면, 돌봄은 그런 세상이 계속 굴러갈 수 있도록 유지하고 지탱해왔다. 생명을 키워내고, 아픈 몸을 돌보고, 노쇠한 이의 곁을 지키는 실천이 없었다면 노동도 지속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다”고 했지만, 돌봄 없이는 노동자도 없다.

대통령은 “노동은 한 사람의 일상을 지탱하며 가족의 오늘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옳다. 하지만 노동이 공동체를 내일로 나아가게 한다면, 돌봄은 그 공동체가 내일을 품은 오늘을 버텨낼 수 있게 받쳐온 버팀목이다.

그럼에도 돌봄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시장에서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은 없는 일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노동 중심의 시선으로 세상의 가치를 측정하는 한, 돌봄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면서도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투명한 축으로 남는다.

실제로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 돌봄을 돈으로 환산하면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에 해당한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안전한 놀이를 지켜주는 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병원에 동행하고 수발하며 신변을 처리하는 일, 장애가 있는 가족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함께하며 동고동락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공식 통계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돌봄은 분명 경제 안에 있는데, 경제의 언어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나 보육교사처럼 임금을 받고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도 오랫동안 저평가되어왔다. 임금조차 없는 비공식 돌봄을 맡아온 사람들의 처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은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권리의 크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까지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묻고 싶다. 노동으로 분류되지도 못한 채, 무급으로, 비공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돌봄을 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연설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소년공이었던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호명하는 장면이었다. 그 이름이 모두에게 인정받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이름도 불러야 한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람들이다. 임금도 없이, 공식적인 인정도 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보살피며 우리들의 일상을 받쳐오고 삶을 구성해온 이들의 드러나지 않은 헌신은 모성애나 가족의 도리라는 말로 사적 미덕의 자리에 오래 묶여 있었다. 사회가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조차도 제대로 건네지 않았다.

소년공이 흘린 땀이 이 나라 성장의 동력이라면, 엄마라는 이름의 돌봄인들이 쏟은 시간과 정성은 그 성장이 가능했던 토양이다. 노동이 대가를 인정받듯, 경력 한줄 남기지 못한 채 우리를 지탱해온 돌봄인들의 노고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대통령은 말했다. “노동이 빠진 성장은 반쪽에 불과하고,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 돌봄이 빠진 성장도, 돌봄이 빠진 노동도 반쪽에 불과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개인의 손해가 되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 경력 단절로만 기록되는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내일은 없다.

대통령은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빛나는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그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려면, 그 모든 사람 안에 돌봄인도 호명되어야 한다. 노동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면, 돌봄은 그 세상을 살려내고 회복시키는 힘이다. 두 힘이 함께 인정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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