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에프(F).03’이 100시간 넘게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택배 뒤집기 단순 작업을 쉬지 않고 하던 지난 18일(한국시각) 밤. 현대차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냉장고를 번쩍 들어 올려 운반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슬그머니 올렸다. ‘그런 단순 작업에 놀라지 말라’며 아틀라스가 몸소 능력 차이 입증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같은 날 미국 보스턴에서 해외 주요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냉장고를 든 아틀라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면서 현대차·기아 공장에 2만5천대가 넘는 아틀라스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날 공개된 영상 속에서 아틀라스는 무릎을 반쯤 굽힌 채 양팔을 사용해 23㎏짜리 소형 냉장고를 가볍게 들어 올린다. 이어 냉장고를 상체에 밀착시킨 뒤 걷기 시작한다. 냉장고가 떨어지지 않도록 상체도 살짝 기울인다. 등에 무거운 물건을 짊어진 인간의 자세와 판박이다. 아틀라스가 냉장고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아틀라스 개발자가 냉장고 문을 열어 음료 캔을 꺼내 마신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런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크기와 무게가 일정하지 않은 물체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도 균형 잡힌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고도화된 전신 제어 기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틀라스가 연구실 수준의 동작 시연을 넘어 변수가 많은 산업 현장에서도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냉장고 운반 영상 외에 아틀라스가 한 발을 들어 올린 채 360도 회전하거나,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백플립(공중제비) 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19일 “아틀라스의 현대차그룹 생산 현장 투입을 앞두고, 현실 작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기업설명회에서 자동차 조립 공정 등에 ‘아틀라스 2만5천대’ 투입 계획을 밝혔지만, 구체적 시점과 공장은 밝히지 않았다. 앞서 현대차는 이 로봇을 2028년 미국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기아는 2029년 조지아 공장에 투입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를 보면,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11일 싱가포르·홍콩에서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아틀라스 투입) 첫 1~2년은 미국 공장에 대량 배치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조립 공정 중 작업자에게 힘들고 가혹한 공정에 우선 투입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정 공정에서 아틀라스 활용처가 입증되면, 완성차의 공장 레이아웃이 글로벌하게 유사하기 때문에 다른 공장으로도 손쉽게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보스턴 기업설명회에는 6개 현대차그룹사와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등이 총출동했다. 다이내믹스 기업공개(IPO) 시점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잦아지는 아틀라스 성능 과시는 상장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으로 평가된다. 이는 경영 승계 등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기업가치는 2021년 인수 당시 11억달러(1조2천억원)에서 현재 20배 이상 커진 것으로 증권업계는 분석한다. 정의선 회장(20%) 등 현대차그룹이 지분 87.8%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할 경우 정 회장은 승계 과정에 쓰일 막대한 현금 확보가 가능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