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좋은 협상 칩”이라고 언급하면서 대만 내 정치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반중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는 미국의 대만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는 반면, 친중국 성향의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 쪽 인사들은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대중국 관계 재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19일 대만 중앙통신사(CNA)·연합보 등을 종합하면, 대만 정부는 미국의 대만 정책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 선유중 부위원장은 18일 국립 타이완대학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회담 이후 미국의 대만 정책은 큰 변화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가 여러 차례 대만 정책 불변 입장을 확인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만 무기 판매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이칭더 총통도 17일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미국의 대만 안보 공약에 기반한 안보 협력과 무기 판매는 역내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을 억제하는 가장 중요한 억지력”이라고 밝혔다.
대만 정부가 미국의 기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만의 지정학적 생존이 사실상 미국의 안보 약속과 첨단 무기 공급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흔들리는 신호는 곧 대만의 국가 안보·경제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집권당으로서는 미국의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반면 국민당 쪽 인사들은 민진당이 미국에 치우친 노선을 걸으면서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잉주 정부에서 국가안전회의 전 비서장을 지낸 쑤치는 17일 한 좌담회에서 “미국이 구하러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이신 국민당 전 입법위원(국회의원)은 민진당이 미국과의 관계에 “일방적 베팅”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영국 가디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대만이 모든 걸 미국에 엮어둬선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접근’을 해, 양안(중국·대만) 관계와 대미국 관계에 동등한 비중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간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회복하고 경제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대만의 평화와 실리를 지키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대만 정책이 이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당 계열 싱크탱크인 국가정책연구기금회 집행위원장 장셴야오는 “대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미·중이 격렬하게 충돌할 수 있다고 중국이 경고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대만에 무기 판매를 발표해 미·중 관계를 흔들 수 있겠느냐”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 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의 분열 심화가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면, 친중국 여론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와 안보 지원을 미·중 관계의 협상 카드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커지면서, 독립 성향의 민진당의 대중국 강경 노선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만 싱크탱크 유에스타이완와치의 양광순 공동창립자는 “미국이 ‘대만 독립’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듯한 어떤 신호도 국민당은 ‘대만 독립 반대’ 의제를 밀어붙이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봤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