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MBC)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주연배우에 이어 감독까지 고개를 숙였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전문적인 역사 고증을 위한 투자와 체계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현대극 ‘21세기 대군부인’의 지난 15일 방송분(11회) 일부 장면이 논란을 빚었다. 이안대군(변우석)이 왕위에 오르는 즉위식에서 자주국 황제가 쓰는 십이면류관 대신 제후국에서 사용하는 구류면류관을 썼다. 신하들은 황제에게 외치는 ‘만세’ 대신 제후국이 쓰는 ‘천세’를 외쳤다. 논란이 커지자 주연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이 지난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역사 고증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도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눈물을 보이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고증을 받으며 시작했는데, 판타지적인 설정에만 너무 매몰됐던 것 같다. 우리 역사의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부분만큼은 제대로 표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0년 ‘철인왕후’(tvN)는 주인공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칭한 대사로 파문을 일으켰다. 2013년 ‘기황후’(MBC)는 역사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인물인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폭정으로 폐위된 고려 충혜왕을 미화해 비판을 받았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2021년 ‘조선구마사’(SBS)다. 1화 방영 직후 중국풍 소품과 음식, 태종의 백성 학살 장면 등이 도마에 오르며 2화 만에 방영이 전면 중단됐다. 모두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 사극’이나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지만, 역사적 기록과의 괴리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금 우리는 전세계 한류 문화를 이끌고 있다. 드라마, 영화 우리만 보는 거 아니다. 전세계인들이 보고 있다. 이제는 그 격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이 시스템이 없거나 수공업 수준이다. 역사 용어, 복장, 역사 왜곡 논란이 매번 터지면서도 늘 그 자리”라고 꼬집었다.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판타지 설정의 현대극을 정통 사극과 동일한 잣대로 비판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한국 콘텐츠가 많이 수출되고 특히 일본·중국 콘텐츠와도 비교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퓨전이라 해도 우리 문화를 정밀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 드라마 ‘브리저튼’은 판타지이지만 연출이나 디자인, 스토리를 정교하게 만들어 설득력을 더했고, 영국 드라마 ‘라스트 킹덤’ 또한 액션 활극이지만 중세를 리얼하게 묘사한다. 성공한 콘텐츠들이 보여주는 수준을 우리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더욱 정교한 고증을 위한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도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자문이 이뤄지지만, 예산이 너무 적다. 또 드라마라는 복합적인 작품에 대해 정교하게 자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화내고 사과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성 강사도 “배우들 출연료는 몇억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몇십만원으로 왜 퉁치려 하시는지, 왜 그리 아까워하시는지”라며 “역사학계도 역사물 고증 연구소 하나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연극에는 드라마트루기(연극 제작 현장에서 극적 구조와 배경을 분석해 감독과 배우를 지원하는 역할)가 있어 조언해주는 과정이 있다. 드라마에도 역사적 고증은 물론 전체적 맥락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