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소송 취하 대가 ‘2조6천억 기금’…“정치비자금 조성” 비판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시위를 벌이던 중 의회의사당에 난입하고 있다. 폭동 가담자 약 1500명이 기소돼 징역형 등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취임 당일 이들 대부분을 전격 사면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가 17억7600만달러(2조6700억원) 규모의 사법 피해자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치·이념적 이유로 사법 피해를 본 이들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이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사법피해자를 위한 ‘무기화 방지 기금’을 신설하면서 사실상의 ‘정치비자금’을 마련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세청(IRS)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자신의 세금신고서가 유출된 책임을 묻고 최소 100억달러(15조원)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법무부는 재판 과정에서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사법피해자를 위한 기금 17억7600만달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법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 기금은 “부당하고 불법적인 정치적·개인적·이념적 이유로 표적이 된”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원은 미 정부의 소송 합의·배상금 지급에 사용되는 연방 예산안 ‘판결 기금’에서 충당한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패배에 불복해 미 의회의사당을 점거했던 ‘1·6 의사당 폭동’ 가담자들이 정부에 손해배상과 특별 배상위원회 설립을 요구해 온 점에 비춰볼 때,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 온 보수 세력에게 돈을 나눠주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개인 변호사 출신인 토드 블랜치 법무부 권한대행이 위원회 위원 대다수를 임명해 기금 운영을 좌우하는 구조이고 지급 기준도 모호하다. 폭동 가담자를 변호하고 있는 마크 맥클로스키 변호사는 “의뢰인들을 위해 기금에서 돈을 신청하겠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나타날 것으로 본다. 정말 기대된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왜 납세자들이 1·6 시위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사법부로부터) 끔찍한 대우를 받았던 사람들은 변호사 비용과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과 법조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하원 법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제이미 래스킨 의원은 “납세자 돈 17억달러를 국고에서 빼내 거대한 비자금으로 만들려는 사기”라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하원 의원 93명은 이같은 행위는 “비자금 조성”이자 “헌법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국세청 소송 사익 추구 합의 저지 의견서’를 제출했다.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을 총괄했던 전직 법무부 변호사 루파 바타차리야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납세자 돈을 이렇게 제한 없이 행정부에 넘기면 남용과 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판과 공적 기금 조성을 맞바꾼 이번 합의는 법적·절차적 문제가 적지 않다. 보통 미국에서 피해자 공적 기금은 의회 입법이나 법원 감독 하에 조성된다. 행정부가 합의를 통해 자체 기금을 신설한 것은 예산 심의권을 가진 의회의 입법 권한을 침해한 것이다. 사법부 우회 지적도 나온다. 소송 중 공적 자금을 조성하려면 담당 판사의 검토와 승인을 거쳐 사건이 종결되어야 한다. 법조계는 행정부가 사법부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소송을 서둘러 취하했다고 본다. 게다가 이번 소송은 원고인 대통령과 피고인 행정부가 모두 사실상 한 몸이어서, 담당 판사조차 소송이 성립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라 재판 자체가 기각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를 소송하고 합의까지 주도한 셈이다.

이번 소송 발단이 된 세금신고서 유출 건은 국세청 전 계약직 직원이 2019~2020년 트럼프의 납세 자료를 뉴욕타임스·프로퍼플리카 등 언론에 넘기면서, 트럼프가 수년간 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됐던 사건이다. 해당 직원은 유출 책임을 두고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2년 연방수사국(FBI)의 마러라고 리조트 압수수색과 2016년 대선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 사건 등과 관련한 소송 등도 취하하기로 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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