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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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1970∼80년대 소외된 삶의 현장을 서정성 짙은 언어로 노래한 '민중적 서정시인' 신경림(1935∼2024).
한국 시문학사에 돌올한 성취를 남긴 신경림의 2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과 삶의 철학을 오롯이 담은 유고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가 묶여 나왔다.
책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광복과 6·25전쟁, 군사독재,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관통하는 균형 잡힌 시론이다.
신경림은 신동엽, 김수영, 김지하, 김남주·박노해 등으로 이어지는 저항시의 계보를 짚으며, 현실 문제에 눈 감을 수 없었던 시대 상황과 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참여나 저항과는 거리를 두었던 서정주와 김춘수, 김종삼 등의 서정시와 모더니즘 시 역시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한다.
나아가 "자기성찰이 없는 시가 아무리 옳은 소리만 골라 한다 해도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에게 문학의 본령은 정치의 도구나 프로파간다(선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은 욕망, 개인적인 정서가 더 짙은 그러한 시를 쓰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시, 통일을 지향하는 시를 쓰면서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해둡니다."(''농무에서 '낙타'까지' 중)
이 고백처럼 그의 시적 상상력은 비상을 꿈꾸었지만, 그가 살아온 억압적 시대 상황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중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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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은 "결국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나를 떠나 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고, 현실 속에 깊이 뿌리박은 시가 될 때 우리 시대의 올바른 시가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돌아봤다.
이런 고민 끝에 그는 산업화 시대에 밀려난 민초들의 슬픔과 한,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그려냈으며, '농무'와 '가난한 사랑 노래' 같은 절창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 타성에 젖은 저항의 언어를, 매너리즘에 빠진 예술적 태도를 경계했다. 자신의 시 세계조차 끊임없이 의심하며 새로움을 불어넣고자 했다.
신경림은 "내 시에서는 더러 내 목소리가 아닌 남의 목소리가 들리고 내 모습이 아닌 남의 모습이 보였다"며 "생각해보면 내가 시를 쓰는 일은 늘 내 시로부터 도망치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게 "시란 본질적으로 자기탐구"이자 "내가 어떠한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길 찾기이며, 다른 존재와 어떠한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고 모색"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시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요, 그 아름다움은 시만이 가진 색채와 향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그 아름다움이란, 시만이 가진 색채와 향기는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또는 이 세상을 사는 많은 불행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이 되고 별이 되는 것. 말하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시만이 가진 색채요 향기로서,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시란 존재하는가' 중)
그의 시론은 문학이 현실을 말할 때조차 놓쳐서는 안 되는 본질을 일깨운다.
책을 엮은 도종환 시인은 "한국 현대시문학사에 대한 성찰이며 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직한 발언"이라며 "신경림 선생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 곧 우리 문학이 고뇌하며 걸어온 길이며 그 길이 한국문학사의 뼈대를 이룬다"고 말했다.
창비.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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