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진가가 응축된 9년 만의 정규 앨범 누군가의 시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노래들
음악적 본질을 향한 태양의 진일보한 여정은 자신의 서른여덟 번째 생일(5월 18일)에 발표한 정규 4집 'QUINTESSENCE'(퀸테센스)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빅뱅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인 'Ma Girl'(마 걸)로 그가 처음 자신의 오롯한 목소리를 냈을 때, 혹은 데뷔 3년 차에 첫 솔로 앨범 'HOT'(핫)의 타이틀곡 '나만 바라봐'로 세상을 매혹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본래 래퍼로 시작했던 연습생 소년이 보컬로 전향하며 느꼈을 막막함. 서바이벌에서 니요(Ne-Yo)의 'So Sick'(소 식)을 부르며 보여준 절박함. 흑인 음악의 소울을 한국인의 성대로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그는 제 안의 무언가를 얼마나 깎아내고 벼려냈을까.
과거의 성취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궤적을 그렸음에도 9년 만에 내놓은 정규 4집 'QUINTESSENCE'에서 그는 또다시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 본질(精髓)이란 무엇인가."
그는 인생의 질문 앞에서 섣불리 답을 안다고 오만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인생은 수수께끼로 시작해 수수께끼로 끝나는 것이며, 다만 자신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다고 고백할 따름이다.
타이틀곡 'LIVE FAST DIE SLOW'(리브 패스트 다이 슬로우)는 그래서 역설적이고 아름답다. 고통과 파멸을 밝게 타오르는 이미지로 묘사하며 끝을 알 수 없는 길 위에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선언. 빠르게 흘러가는 찰나의 현실 속에서 영원한 잔상을 남기겠다는 이율배반은 마치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치열하게 살아내겠다는 지독한 다짐처럼 들린다.
미국의 프로듀싱팀 더 스테레오타입스와 조우한 'BAD'(배드)의 묵직한 타격감, 더 키드 라로이(The Kid LAROI)가 힘을 보탠 'OPEN UP'(오픈 업)의 트렌디하고 실험적인 청량감. 낭만적인 파리의 밤거리를 걷는 듯 미니멀한 전개가 돋보이는 'MOVIE'(무비), 2NE1과 함께했던 'Lollipop'(롤리팝)을 브릿지에서 영리하게 샘플링해 단숨에 에너지를 반전시키는 'YES'(예스).
태양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낡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감각을 앨범 곳곳에 심어두었다.
화려한 조명과 트렌드만 좇는 무정한 판에서 마침내 인간이 인간을 긍정하고 위로하기 시작한 순간의 이야기. 그것이 이 앨범을 관통하는 또 다른 정서다. 곁에 머무는 이들의 소중함을 담담히 읊조리는 'WOULD YOU'(우드 유)나, 마지막이라는 슬픔을 역설적으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치환한 'G.O.A.T', 그리고 영원의 메시지를 담은 닫는 문 '4U'에 이르기까지.
빅뱅이라는 팀의 온상이 돼준 따뜻한 '봄'의 역할이 그러했듯, 20년 동안 작은 구설 하나 없이 묵묵히 자신을 지켜온 성실함이 그러했듯, 태양은 상대를 대등하고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아티스트다.
태양의 목소리라도 곁에 없으면 삭막하고 위태로웠을 누군가의 시간에 그는 노래한다. 자신이 그렇게 무대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한, 이 음악을 듣는 당신 역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짙은 위로는 얄팍한 동정이 아니다. 음악을 통해 청자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무언가를 건드리고자 하는 묵직하고도 다정한 연대다.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서 태양은 숱한 후배들의 롤모델로 불리며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멜로디 위를 걸어왔다. 한 아티스트의 치열한 고뇌와 진실한 육성이 오롯이 묻어나는 음악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그의 삶이자 예술일 것이다.
'QUINTESSENCE'는 그래서 더 자신의 서른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세상에 내어놓은 뜻깊은 자축인 동시에, 오랜 시간 그의 곁을 지키며 음악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건네는 무엇보다 묵직하고 값진 선물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20년의 세월을 춤추고 노래해 온 한 사내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기어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증명해 낸 눈부신 진화이자 삶의 정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