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애 멀쩡해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어요." 보호자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 말 뒤로 보호자의 얼굴엔 옅은 자부심이 비친다. 매일 함께 사는 사람이 가장 먼저 안다는 믿음. 그 믿음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검사 결과지가 보호자의 말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다.
신장 수치가 이미 한참 올라가 있는 노령견, 간 효소 수치가 정상 범위를 한참 넘긴 중년의 강아지, 심장 사상충에 감염됐는데 평소 활력은 멀쩡했다는 보호자의 증언. 매번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예전 일이다. 매년 꼬박꼬박 검진을 받아온 열살 넘은 강아지가 있었다. 보호자는 "올해도 별일 없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혈액 검사에서 신장 수치가 작년보다 확연히 올라가 있었다. 아직 증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아직'이 있을 때 잡았기 때문에 식이 조절과 약물 관리를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해 검진을 건너뛰었다면 보호자가 이상을 눈치챌 즈음엔 이미 만성 신부전이 한참 진행된 뒤였을 것이다.
보호자는 결과지를 들고 묻는다.
"선생님, 얘 아무 증상도 없었거든요. 정말이에요."
그 말은 거의 모두 사실이다. 문제는 증상이 없다는 것과 병이 없다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얘기다. 작년 12월 직장인 국가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지를 받아들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내가 알던 내 몸과 종이 위 숫자가 퍽 달랐기 때문이다. 운동을 더 하고 식단을 바꾸고, 그렇게 '인간 개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여 현재까지 살고 있다. 체중과 체지방이 줄고 근육은 늘었다. 다음 건강 검진 때 나빴던 수치들도 정상 범위 내로 들어와 있으리라 믿는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은 결국 한 장의 종이였다.
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그 종이는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던 '멀쩡한 나'는 계속 멀쩡한 채로 어딘가가 망가져 갔을 것이다.
동물의 몸도 사람의 몸과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사람의 췌장암을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증상을 느낄 즈음이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양이는 아픈 티를 내지 않는 데 있어서 개보다 한 수 위다. 밥 잘 먹고, 잘 자고,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고양이에게서 만성 신부전이나 당뇨가 발견되는 일은 임상에서 드물지 않다. 보호자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땐 이미 질환이 한참 진행돼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 피터 아티아, 빌 기퍼드의 「질병 해방」이라는 책에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저자가 의대 첫해에 만난 병리학 교수의 질문이다.
"내가 의대에 들어간 첫해에 병리학 교수님은 교묘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심장병의 가장 흔한 '표시'(증상)는 무엇일까?' 가슴 통증도, 왼팔 통증도, 가쁜 호흡도 아니었다. 가장 일반적인 답은 '돌연사'였다."
가장 자주 발견되는 증상이 죽음이라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동물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동물은 통증을 숨긴다. 약하다는 신호를 보이는 순간 무리에서 도태된다는 본능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그래서 동물의 '멀쩡함'은 사람의 '멀쩡함'보다 더 두꺼운 가면이다.
같은 책에는 존 F. 케네디의 말이 인용돼 있다.
"지붕은 날이 밝을 때 수리해야 한다."
비가 새기 시작한 뒤에 사다리를 찾으면 늦다. 의학에서도 그리고 반려동물의 몸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안타까운 보호자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아직은 괜찮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사람이다.
이때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지켜보는 것과 미루는 것은 다르다. 기준 있는 기다림은 지켜보는 것이고, 기준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미루는 것이다. 정기 건강검진은 그 기준선을 만드는 일이다.
반려동물의 건강 검진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 둘째, 이미 진단받은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합병증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 어느 쪽이든 핵심은 '미리'다. 미리 보면 미리 손을 쓸 수 있다.
권장 주기는 단순하다. 빠르면 2~3세부터 시작해 1년에 한 번, 부담이 되면 최소 2~3년에 한 번이라도. 7세부터는 노령기에 진입하므로 매년 한 번.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기본 검사는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방사선·초음파), 소변 검사다. 여기에 나이와 증상, 기저 질환에 따라 신장 검사(SDMA), 호르몬 검사, 심장 검사(심초음파, pro-BNP) 같은 항목이 더해진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1년에 한 번은 너무 자주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 반려동물의 1년은 사람의 약 5~7년에 해당한다. 우리 기준으로 1년이지만 반려동물 기준으로는 5년에서 7년이 흘러간 것이다. 5년에 한 번 사람이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그건 너무 드문 일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에게 1년 주기가 결코 짧지 않은 이유다.
검진이 부담스러운 보호자도 많다. 비용도 그렇고 검진 자체가 반려동물에게 스트레스가 될까 걱정도 된다.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검진을 안 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아프고 난 뒤의 치료비는 검진 비용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만성 신부전이 진행된 뒤의 입원 치료, 심장병이 악화된 뒤의 장기 투약.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그때 가서 보호자가 짊어지는 심리적 무게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최근 반려동물 보험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고, 일부 상품은 기본 치료비 보장에 더해 정기 검진이나 특정 검사 비용을 부분적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관심이 있다면 보장 범위와 예외 조항을 미리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검진을 받을 때는 이전 검사 결과지를 챙겨 가길 권한다. 병원이 바뀌었더라도 상관없다. 작년 수치와 올해 수치를 비교할 수 있다. 같은 정상 범위 안의 숫자라도 작년보다 올라가고 있다면 그건 작은 적신호다. 단발성 검사가 아니라 추세선이 보이기 시작할 때 검진은 비로소 진짜 검진이 된다.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온다.
"우리 애 멀쩡해요."
과연 속도 겉처럼 멀쩡한지 매년 확인하자. 검진은 사랑의 한 형식이다.
지붕은 날이 밝을 때 수리하는 게 가장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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