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중, 신냉전 끝내고 ‘전략적 안정’ 진입…힘의 균형 달라졌다”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최고지도부 관저·집무실인 중난하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0년간 미국이 중·미(미·중) 관계를 전략 경쟁과 신냉전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이제 중·미 관계는 경쟁 속에서도 충돌을 피하고 협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과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왕융 베이징대학 교수(국제관계학원)는 18일 한겨레에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며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지위에 올랐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핵심적인 성과로 미·중 양국이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라는 새로운 방향에 합의한 점을 꼽았다.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제시한 새로운 방향에 트럼프 대통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 백악관은 17일(현지시각) 공개한 팩트시트에서 양국 정상이 “전략적 안정에 기반한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확인했다. 왕 교수는 베이징대학 미국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중국 내 대표적인 미·중 관계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변화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존중하는 현실주의적 지도자”라고 본 왕 교수는 “지난해 무역·관세 전쟁 등을 거치며 중국이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2017년 트럼프 1기 방중 이후 10년에 가까운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이 “중국과 공존하고 협력해야 미국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무역 분야 교류 확대는 양국 관계 복원의 기반이 될 것으로 왕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며 “중국 역시 미국과의 경제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는 관계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중국이 2028년까지 매년 최소 170억달러(약 25조4천억원) 규모의 미국 농산물을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잉 항공기 200대도 중국의 구매 목록에 올랐고, 무역위원회와 투자위원회 설립에도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성공적인 미-중 거래의 관건으로 ‘대만 문제’를 꼽았다. 왕 교수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문제가 경제·무역 협력과 연동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무기 판매를 ‘좋은 협상 칩’이라고 했는데, 중국 역시 경제·무역 협력과 연결시키고 있다”며 “미국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중국의 대규모 구매 계약 이행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중국은 희토류 분야에서 미국 첨단산업의 초크포인트를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며 “양국 간 힘의 균형이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봤다.

18일 왕융 베이징대학 교수(국제관계학원) 겸 미국연구센터 센터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를 미·중 관계의 레드라인(한계선)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장면을 두고 왕 교수는 “대만 문제를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와 직접 연결시켰다”고 해석했다.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지할 경우 안정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뒤 ‘대만 독립이 전쟁을 유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며 “이는 중국 입장에서 중요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다만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만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며 “대만해협 현상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팩트시트에 대만 문제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왕 교수는 거래적 사고에 익숙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기존 입장을 흔들고,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에 대해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며 양국 긴장 완화로 “각 나라는 더 넓은 외교 및 경제 협력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 교수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중국이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점은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전략적 수확”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대화·협력 아래 해결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 외에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중국은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안정의 편에 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백악관은 미·중이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부과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이란에 조속한 해협 개방을 촉구하는 것에서 미국 입장에 한 발 더 다가선 것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 왕 교수는 “미국 뿐만 아니라 다수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는 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지난 14일 중국 어린이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위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꽃과 미국·중국 국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왕 교수는 이번 회담 이후 미·중 군사 소통 채널의 복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2년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끊겼던 중국 중앙군사위원회-미 합참 간 연락, 동부·남부 전구-인도태평양 사령부 간 연락, 일선 함정·공군 간 직통 소통 체계 등이 일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군사 소통 복원은 전략적 안정 관계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이어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양국 군 당국 간 직접 연락 체계 복원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왕 교수는 2017년 트럼프 1기 방중 이후 미-중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된 선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위험은 존재하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는 9월 시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포함해 양국 정상 간 최소 네 차례 회동 가능성이 있다”며 “이처럼 밀집된 정상외교 일정은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위험을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외에 직면한 정치·경제적 압박도 미·중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왕 교수는 “이란 전쟁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중국은 미국이 외교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이후 미·중 관계를 크게 후퇴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조회 11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