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 시중은행이 장부상 손실 처리한 뒤에도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채권 추심을 이어가는 연체채권이 26조원, 대상 인원은 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채권이 10년 이상 추심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 은행들마저 사실상 장기 채권 추심을 관행처럼 계속한 셈이다. 수익성 논리에 치우친 이런 관행이 장기간 채무자의 삶을 옥죄어 왔다는 점에서, 정부와 은행은 조속한 재기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은 통상 6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장부상 손실 처리하고 ‘특수채권’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손실 처리와 채무 소멸은 별개다. 은행은 해당 채권을 보유한 채 외부 추심기관에 위탁해 회수 절차를 계속 진행한다. 문제는 연체채권은 소멸시효가 5년인데도 은행이 법원을 통해 손쉽게 승인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 재연장하는 관행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0년 이상 장기 특수채권이 13조원, 15년 이상도 4조5천억원에 이른다. 반면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채무조정에는 인색하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채무조정 금액은 599억원으로 전체 특수채권의 0.22%에 그쳤다.
19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사실상 은행이 방치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얘기다. 이미 손실 처리된 채권은 재무제표에서 제외되면서 은행 경영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실무자는 회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우려해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이 장기간 추심만 반복되면서 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연체채권을 제3자에 매각한 뒤에도 원채권자인 금융회사의 고객 보호 책임을 강화하고, 연체채권 매각 때 보고·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또한 소멸시효 연장 여부를 원채권자가 직접 판단하도록 해 기계적 연장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은행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감독당국의 좀 더 강한 개입이 불가피하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금융 영역에서는 여전히 과도하고 가혹한 채권 추심이라는 ‘약탈적 금융’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기 연체채권의 소멸시효를 무분별하게 연장하는 관행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연체자의 조속한 경제활동 복귀를 돕는 것이야말로 금융 본연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