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 특수채권 26조…‘손실 처리’하고도 20년째 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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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동생의 사업 보증을 섰다가 7억원의 빚을 떠안은 ㄱ(78)씨는 중증장애로 수입까지 끊기며 빚을 갚을 수 없게 됐다. 은행은 그의 연체채권을 손실 처리한 뒤 특수채권으로 분류했고,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 그의 특수채권을 관리하게 된 담당자는 ㄱ씨의 나이와 상환 능력, 재산 상황 등을 고려해 4천만원만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감면하는 채무조정안을 제시했다. ㄱ씨도 동의했지만 은행 본사는 채무 원금이 너무 크다는 이유만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ㄱ씨는 은행 내부 채무조정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속 신용불량자로 남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원시적 약탈금융”이라고 비판한 장기 연체채권 추심 관행이 시중은행에서도 이어져오고 있다.

특수채권은 금융회사가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해 회계상 손실 처리한 채권을 말한다. 손실 처리를 했더라도 채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해당 채권을 계속 보유한 채 신용정보회사 등에 위탁해 추심과 채권 회수 절차를 이어간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이 보유한 특수채권은 총 26조7852억원, 해당 채무자는 60만802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개인 채무자는 52만253명이고, 법인 채무는 8만7775건이다. 금액으로 보면 개인 특수채권은 7조3828억원, 법인 특수채권은 19조4024억원이다. 은행들은 법인 채무의 경우 추심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인 특수채권도 ㄱ씨와 같이 보증 등으로 개인에게 변제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남아 있다.

연체채권은 통상 5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는데도 은행들이 지급명령이나 일부 변제 유도 등의 방식으로 특수채권의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해왔다. 이 때문에 특수채권으로 편입된 지 10년이 넘은 장기 특수채권은 13조1314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이 중 ㄱ씨 사례처럼 15년 넘게 은행이 쥐고 있는 특수채권도 4조9399억원에 달한다. 5년 이상 10년 미만 특수채권도 5조5982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의 특수채권이 7조3367억원(법인 6조1712억원, 개인 1조1655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국민은행이 6조7065억원(법인 4조3835억원, 개인 1조7588억원 등)으로 뒤를 이었고, 신한은행 5조3582억원(법인 4조79억원, 개인 1조3503억원), 농협은행 4조1055억원(법인 2조5281억원, 개인 1조5775억원), 하나은행 3조2783억원(법인 2조3118억원, 개인 9664억원) 순이었다. 다만 우리은행은 이 가운데 1천만원 이하 개인 대출자의 채무(322억원)는 지난 3월 말부터 추심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반면 은행들의 특수채권 채무조정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채무조정 금액은 총 599억원에 그쳐 전체 특수채권 규모의 0.2%에 불과했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0.75%로 가장 높았고, 국민은행(0.30%), 신한은행(0.12%), 우리은행(0.09%), 농협은행(0.04%) 순이었다.

특수채권 관리회사에서 근무했던 한 금융권 관계자는 “특수채권은 손실 처리돼 재무제표 등 경영지표에서 아예 사라진 채권이다 보니 경영진의 관심 밖에 있다”며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지급명령 등을 통해 소멸시효를 연장한 채 10년, 20년씩 보유하며 채무자의 재기를 가로막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은 “경영지표 밖에 있다는 이유로 방치돼온 특수채권은 은행의 책임 회피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며 “채무조정과 시효 연장 관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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