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을 걸으며 [똑똑! 한국사회]

지난달 20일 화천강을 따라 풍산리 가는 길, 디엠제트(DMZ) 21코스. 강지나 제공

강지나 | 교사·‘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어제 떠들썩하게 들어오더니 오늘 아침에 휭하니 다 가네?” 노인회관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말씀이다. 나는 ‘실상사 작은학교’ 학생들과 두 주간 ‘디엠제트(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을 걸었다. 매년 세상의 현실을 보고자 도보여행을 하는데 올해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 평화를 전하자는 의미로 디엠제트를 선택했다. 대부분 접경지역이다 보니 주민이 적은 마을을 만났고 그마저도 노인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적막한 마을에 들어서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기하게 우리를 보고 궁금해하셨다.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한 어르신은 친히 노인회관을 섭외해서 빌려주시고, 여러가지 편의를 봐주셨다. 10년 전만 해도 대학생 농활대가 찾아와 활발하게 마을과 교류했다고 전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학생들과 저녁 시간에 따로 대화도 나누고,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에 아이들 영상을 올리기도 하셨다. 한번은 한밤중에 술과 안주를 들고 불쑥 찾아와 예전 농활대와 하셨듯이 술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분도 계셨다. 물론 미성년자들이니 술은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조용한 마을에 어린 학생들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반갑고 정겨웠을지 이해가 됐다.

디엠제트 평화의 길에서 인상 깊게 본 또 다른 장면은 ‘지뢰’ 표지판이 붙은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과 군부대였다. 우리가 걸은 구간이 철원, 화천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군부대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했다. 후방에서 평화롭게만 살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무기와 군인을 보유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우리의 국방예산은 올해 65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9%를 차지하고, 지난해 무기 수출은 전세계 점유율 6%에 이른다. 이렇게 군 산업이 막강한 이유는 우리가 분단국가이고, 군비 경쟁을 하며 북한과 여전히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좁은 반쪽 한반도에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케이(K)-컬처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열심히 무기 산업을 키워서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수많은 군용차량과 군인들을 보았는데, 모두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이들이었다. 저 앳되고 푸른 청춘들이 군 철책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뭔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애잔함을 느끼게 했다.

지난달 16일 DMZ생태평화공원에서. 강지나 제공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철책 너머에 있었다. ‘지뢰’ 표지판이 붙은 철책 안쪽은 사람이 갈 수 없는 지역이다.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자연이 제 모양 그대로 자라서 말 그대로 야생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시림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자연의 풍부함과 생명력에서 나오고 있었다. 특히 평화의 댐으로 가는 안동철교에서 본 북한강 상류는 넓은 모래사장과 울창한 숲이 강을 따라 계속 펼쳐져 있어서 무척 아름다웠다. 야생 동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었고,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똥, 사체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분단으로 만들어진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인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자연이 맘껏 자신을 뽐내며 울창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진 자연 낙원이 지뢰밭이라 접근이 어렵다는 점도 우리의 모순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지난달 21일 평화의 댐을 가는 길, 디엠제트(DMZ) 23코스. 강지나 제공

디엠제트 평화의 길은 강화에서부터 고성까지 이어진 510㎞에 이르는 한반도 횡단 길이다. 작은 천과 나지막한 산이 펼쳐져 있어 경치를 감상하며 걸을 수도 있지만, 마을도 없고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달린 군사 도로만 걸어야 할 때도 있다. 한반도의 현실을 체험하고 싶다면 한번 걸어볼 만한 길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 학생들이 어른들의 응원과 칭찬을 많이 받았다. 기성세대가 못 이룬 평화와 통일을 꼭 이뤄달라는 당부, 노인만 남아 쓸쓸한 마을을 찾아와서 고맙다는 인사, 대견하다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며 건네는 응원, 진부령을 내려가는 길에 흔쾌히 차에 태워주는 호의 등등. 아직 우리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고, 이 온기라면 저 디엠제트의 철책도 녹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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