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조건은 충족됐다 [세상읽기]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인도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 제공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으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의회 청문회에서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조건 충족 가능 시점을 도널드 트럼프 임기 이후인 2029년 1분기로 내다봤다. 현지 사령관이 이렇게 완고하면, 전환이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이에 한국 국방부는 워싱턴을 직접 상대하며 조속한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사령부(연합사) 차원의 검증은 실무적으로 준비하되, 미 국방부와 의회에 대한 설득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접근이다. 그럼에도 한-미 국방장관 회담 뒤에 안규백 장관은 한·미 간에 “약간의 인식차”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전작권 전환을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경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준비된 상태에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미국 쪽에 사실상의 거부권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군사주권의 회복만을 내세워 전환을 밀어붙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프레임의 실체를 벗겨내고, 이를 정면으로 돌파할 필요가 있다. 애초 전작권 전환은 ‘조건’이 아니라 ‘시기’를 기준으로 논의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12년 전환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2015년으로 연기했다. 전환 방식이 바뀐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2015년이 다가오면서 보수층을 중심으로 전작권 전환 연기 주장이 높아지자, 박근혜 정부는 ‘조건 기반’이라는 새로운 틀로 전환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즉, ‘조건 기반’ 프레임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다.

더욱이 변화에 견줘 요구되는 조건이 과도하게 설정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합의된 전작권 환수는 연합사를 해체하고 한국군이 독자적 지휘권을 행사하는 ‘병렬형’ 체계였던 데 비해, 현재는 연합사 체제를 유지한 채 사령관만 한국군 장성이 맡는 ‘통합형’ 구조로 추진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국적만 바뀌는 것으로 변화 폭이 크지 않다. 그런데도 세가지 조건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 그리고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안보 환경’으로 되어 있으니, 마치 한-미 동맹 해체라도 상정하는 것 같다.

조건을 구성하는 세부 과제 역시 마찬가지다. 예컨대 전작권 전환 논의 때마다 지적되는 것이 한국군의 감시정찰 능력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이 분야에서 한국군은 비약적 발전을 이뤄왔다. 2000년대 초반 ‘백두산까지 듣고, 금강산까지 본다’는 백두·금강 사업을 통해 영상과 통신·신호 정보 수집 능력을 확보했고, 2010년에는 첨단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했다. 여기에 올해 두세시간 주기로 북한 전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5기의 군사 정찰 위성까지 확보했다. 그럼에도 전작권 얘기만 나오면 한국군이 아직 까막눈인 것처럼 취급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준비와 성취가 20년 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요구 조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쪽에 의해 새로운 과제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마치 높이뛰기 경기에서 막대가 계속 올라가는 격이다.

전작권 전환은 단지 작전적 주도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을 스스로 기획하지 않는 군은 몸집이 아무리 커져도 독자적인 전략 사고를 하기 어렵다. 더욱이 미국의 동맹 정책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한국군 주도의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는 일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조수석에 계속 앉아 있어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전작권 환수는 원래 보수 진영에서 먼저 제기된 이슈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평시 작전권’만 환수하는 데 그쳤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 국가로서 창피한 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아직도 시기상조론에 사로잡혀 조건 타령을 하고 있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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