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급조정권’으로 노조 압박 “권위주의 정부 방식” “국가의 월권” 노동계 비판 거세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전자 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민석 국무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를 사흘 앞두고 김민석 총리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자 노동계와 학계에서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파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가 노조를 겨냥한 압박용 카드부터 꺼내 들면서 헌법상 노동3권과 노사 자율교섭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긴급조정을 정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 76조는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수차례 개정 요구를 받아온 조항인데도, 정부가 이를 사실상 ‘파업 통제 수단’처럼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권위주의 정부식 노사 개입”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18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사 간 2차 사후조정 회의를 앞두고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돼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며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를 대상으로 사실상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노동계는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위법성이 있다고 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76조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저히 국민 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할 때”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20년 전부터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아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7년 해당 조항이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반한다며 관련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수차례 요구했다. 긴급조정을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 부처의 수장인 노동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독립된 기구’로 보기 어렵고, 발동 요건 역시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이유에서다.

윤애림 노동자권리연구소장은 “국제노동기구(ILO)는 파업의 장기화로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에 위협이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에만 파업 제한이 가능하다고 엄격하게 보고 있다”며 “현재 한국의 긴급조정권 발동요건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사실상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파업에 따른 코스피 하락 가능성과 그에 따른 정부 지지율 악화를 염두에 둔 판단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윤 소장은 “독소조항을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재벌 총수·주주의 이해관계를 위해 발동한다면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돌입해 경제적 피해가 현실화한 상황도 아닌데, 정부가 사전에 긴급조정권을 거론하며 노조를 압박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김상은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는 “아직 파업에 돌입하지도 않았는데 교섭 과정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회사 쪽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파업 관련) 논의 자체를 사전에 틀어막는 방식으로 (긴급조정권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월권”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긴급조정권 발동은 전형적인 권위주의 정부가 취하는 방식”이라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해야 할 문제에 국가가 깊숙이 개입하면 노사 자율성이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번처럼 정부가 자신의 의지대로 노사 문제에 개입할 경우 정권 성향에 따라 노사관계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사실상 친기업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향후 노정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노동계가 반발하는 등 갈등이 커질 경우 향후 노동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정책 전반도 친기업적으로 기울 수 있다”고 짚었다. 권 변호사는 이어 “긴급조정권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기업교섭을 촉진하는 등 교섭을 확장할 수 있는 제도와 체계를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긴급조정권 검토는 지난 1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김 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산업부 장관으로서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어 김민석 국무총리도 1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며 사실상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를 공식화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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