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실미도 공작원 4명은 주소, 가족관계를 모두 진술하였으므로 (공군 제8020부대 교도소 소장) 한00 중령은 위 4명의 유족 또는 친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통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략)
군행형법 및 시행령에서는 사형집행 사실의 통지 및 시체의 인도를 강제하고 있는데 국가가 실미도 사건 실체의 은폐를 위해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또한 위 행위는 이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위 4명의 시체인도를 하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유족에게 상처를 계속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불법성이 크다.”
20년 전인 2006년 1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실미도 사건 조사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국가가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의 주소·가족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형집행 사실 통지와 주검 인도를 하지 않는 불법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이후 국방부는 암매장된 유해가 묻힌 지역을 찾기 위한 조사를 해 복수의 매장 후보지를 특정하고 2006년부터 2024년까지 네 차례 유해 발굴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도 암매장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유해 발굴 시행을 권고한 바 있다.

다섯번째로 시도되는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유해 발굴 개토제가 18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 벽제묘지공원 5-2구역(덕양구 보광로 193-2)에서 열렸다. 사형집행 54년 만이다. 개토제는 유해 발굴을 위해 땅을 열기 전 올리는 제사다. 2년 전에도 같은 곳에서 발굴이 시도됐지만 유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국방부와 2억원 예산 용역계약을 맺고 오는 12월까지 벽제를 포함 서울 오류동 옛 공군정보부대 터와 인천가족공원 내 팔각정 일원 등 3곳의 매장 추정지를 파볼 계획이다. 개토제를 연 벽제에서는 이번 주 내내 발굴이 진행된다. 선사문화원 관계자는 “조사원 5명과 인부 5명 등 총 10명이 투입된다”고 말했다.
이날 개토제는 국방부 간부의 추도사와 술잔을 올리는 초헌 등 제례의식, 임충빈(67) 유족 대표의 추모시 낭독, 유해발굴 용역업체 대표의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추모사를 한 김미성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장 직무대리(군인권총괄담당관)는 “1971년 발생한 실미도 사건과 이듬해의 사형 집행은 이 자리에 계신 유가족 여러분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며 “오늘 개토제를 통해 희생되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이번 유해발굴 작업에서 유가족들의 염원대로 네분의 유해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발굴을 책임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은 “이번에 반드시 유해가 나와 유족들의 응어리가 풀리길 간절히 바란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국방부 추도사도 장관 이름으로 내지 않았다.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유족 중엔 이서천의 동생 이향순(84)씨와 임성빈의 동생 임명빈·임흥빈·임일빈·임충빈씨, 공작원 박원식의 동생 박남식씨 등이 참석했다. 이향순씨는 제례의식을 하던 중 “오빠, 언제까지 땅에 있을 거야. 빨리 나와요”라면서 오열했다. 행사가 끝난 뒤 유족들은 “유해발굴 기간 중 유족을 위한 차량 편의제공도 용역업체에 맡겼다. 국방부가 직접 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북한 침투와 김일성 암살 목적으로 조직된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제209 파견대) 공작원 22명(총 31명 중 7명은 훈련 중 처형, 2명은 당일 기간병과 교전 중 사망)은 1971년 8월23일 부당한 대우에 항거해 버스를 탈취하고 청와대가 있는 서울로 진격하다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했다. 자폭에도 살아남은 임성빈(1947년생)·이서천(1940년생)·김창구(1940년생)·김병염(1947년생) 등 4명은 7개월 뒤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은 1971년 12월6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보름 만인 21일 항소가 기각됐고, 상고하지 않아 9일 뒤인 12월30일 사형이 확정됐다. 이듬해인 1972년 3월10일 서울 오류동 소재 공군 제2325부대 사격장에서 총살형이 집행돼 암매장됐다.
사형집행 공작원들이 상고를 제기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국가의 거짓말과 회유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보고서는 “상고 미제기 이유의 직접적인 증거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실미도 사건 발생 직후에도 월남 파병을 조건으로 제시하며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에게 입을 다물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회유한 사실이 있다는 간접사실과 정황 증거들을 고려하여 볼 때 상고 제기 시점에서도 실미도 공작원들은 당국외 회유에 의해 상고를 제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사형집행 공작원들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됐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사형당한 공작원 임성빈의 경우 유족들이 제기한 상소권회복 청구가 2023년 받아들여져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다시 진행 중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