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가리 새 정부가 오르반 빅토르 전임 총리의 ‘초호화 집무실’을 공개했다. 시민들은 나랏돈 수조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응접실과 테라스를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총리는 16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 게시물에서 “붕괴한 정권의 호화 건물들을 모든 헝가리 언론들과 둘러봤다. 대중 가이드 투어도 시작됐다”고 알렸다. 오르반 전 총리가 자신과 내각 장관들의 집무실로 쓰던 부다페스트 부다성 내부의 옛 가르멜회 수도원 건물을 이날 일반에 개방한 것이다. 오르반 총리는 2010년부터 16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수도원 건물은 18세기 지어질 당시의 네오고딕 양식을 그대로 둔 채, 내부는 호화판으로 리모델링됐다. 오르반 전 총리는 참나무 원목으로 마감한 개인 서재를 썼으며, 도나우강을 굽어보도록 테라스를 새로 설치했다. 각료 회의실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광대한 영토를 표시한 지도를 걸어놓았다. 복도엔 헝가리 거장들의 그림이 가득 걸렸다.

시민들은 놀라움과 울화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한 여성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박물관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 출신의 대학생 에리크 폴라체크는 리베라시옹에 “그들이 코로나 (팬데믹) 위기 한복판에 이렇게 호화로운 건물을 꾸몄다니 충격적이다. 팬데믹 동안 나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는데 (봉쇄로) 졸업시험도 못 치렀고, 내 도시에선 기업 세 곳 중 하나가 문 닫았다”며 “그런데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거나 기업 하나를 살리는 대신 이 보석 같은 건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머저르 총리는 오르반 전 총리가 리모델링에 1조포린트(4조8000억원)를 썼다고 알렸다. 그는 “건물을 반쯤 완성된 상태로 둘 수 없으니 공사는 마무리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계약을 면밀히 검토해 과다청구 가능성을 잡아내고 관급공사 기업들이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머저르 총리의 정당인 중도 우파 ‘존중과 자유당’은 지난달 총선에서 과반 넘는 득표율로 오르반 전 총리의 극우 정당에 압승했다. 오르반 전 총리의 부패와 반유럽연합 기조를 끊는 게 주된 공약이었다. 머저르 총리는 전임자가 남긴 집무실에 입주하는 대신 19세기에 지어진 의회 근처 건물을 쓰기로 했다. 오르반 전 총리 등 전임 정부의 퇴직 관료에게 지급될 예정이던 9만유로(1억5700만원) 퇴직수당도 끊겠다고 했다.
리베라시옹은 헝가리 엘테대 정치학 교수인 페테르 춘데를리크를 인용해 “머저르는 선거운동 내내 권력 엘리트의 부패를 규탄했다. 병원은 낡아 무너지고 공립학교는 재정 부족에 시달리는데, 정치 엘리트들은 국민과 동떨어져 사치 속에 산다는 것”이라며 “이번 가이드 투어는 권력의 궁전을 점거하는 민중이라는 혁명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