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뒷전주의’가 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 지도부 업무·거주 공간인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 |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에서 중국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의 미-중 관계”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의 발표문에 이런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엔비시와 한 회견에서 “오해가 더 넓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이 중국의 이 강조점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시진핑은 2012년 주석 취임 이후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했다. 미국과 중국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 대국임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수용할 만큼 충분히 넓다”며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웠다. 미국은 이를 태평양을 미·중이 나눠 갖자는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새뮤얼 로클리어 당시 미 태평양 사령관은 “그것은 우리 동맹국들을 팔아넘기는 것”이라며, 한국·일본·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을 중국 영향권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에는 ‘핵심 이익 상호 존중’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대만·티베트·신장·남중국해가 포함된다. 미국이 이를 수용하면 사실상 이 지역에서 중국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오바마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요구를 무시했다. 1997년 장쩌민-클린턴 공동성명의 ‘건설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도 수정해, 2005년 로버트 졸릭 부국무장관이 중국에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라는 요구였다. 트럼프 1기 집권 때에는 중국을 국제공급망에서 분리하려는 디커플링으로 중국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디커플링을 디리스킹으로 표현만 완화하고는 “투자하고, 연대하고, 경쟁한다”는 자체적인 대중전략 언어를 구사하며 중국의 프레임을 거부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에 대해 ‘측정된 경쟁’과 관리 가능한 이견을 포함해야 한다며, 구체적 행동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공존할 수 없다”며 대만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고, 잘못 다뤄지면 미-중 관계 전체가 “큰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조건으로 대만을 설정한 것이다. 안정을 원한다면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루비오가 말한 대로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트럼프는 이를 수용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의 거부로 좌절됐던 신형대국관계는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적어도 부분적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금지선을 미국이 수용했다면, 이는 서태평양에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이란 전쟁은 그럴 수밖에 없는 미국의 현실을 말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 전쟁에서 중동 전역의 미군 기지의 시설물이 적어도 228개가 타격을 받았다. 중동 기지들이 재건돼 운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5주간의 교전 동안 미국 전력의 핵심인 고가의 첨단 정밀유도무기의 30∼80%가 소진돼, 이를 메꾸려면 6년이 걸린다는 분석이다.

대양을 넘어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만이 가진 능력이고, 미 군사력 우위의 핵심이다. 이런 미국의 군사력을 해당 지역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이다. 이란조차 미국을 상대로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대만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은 이란보다도 훨씬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중국의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을 제압할 수 있을까?

미 중앙정보국에서 중국을 분석해온 세계 최고의 중국 분석가 존 컬버는 11일치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와의 회견에서 대만 사태와 관련해 “국방부의 일부 구상은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판단되면 고가치 해군 자산들을 전역 밖으로 빼내야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싸워서 들어와야 하는데, 어디서부터인지는 불분명하다”며 “괌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먼저 도망간다는 것이다. 이란도 중동의 미군 기지들을 거의 불능화한 데서 보듯이,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괌 기지들 모두가 중국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사실상 파탄해, ‘미국 뒷전주의’(America Last)로 전락했다. 동맹들에 대한 협박과 영토 합병 위협,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한 무차별 관세전쟁,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에 이은 이란 전쟁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무력 사용 등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재촉한 결과이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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