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공공극단은 왜 그를 필요로 하는가
임도완의 연출 문법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미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4월, 인천에서는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도시'를 무대에 올렸고,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서는 지난해 만든 '감찰관'을 대학로 무대로 이어갔다. '니들이 인천을 알어¿! '(이하 '니들 인천')가 인천시립극단의 예술감독 임도완 체제의 첫 공식 제작 공연이라면, '감찰관'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현재를 보여주는 신작이다.
'니들 인천'이 공공극단의 언어를 묻는 작품이라면, '감찰관'은 그 질문을 떠받치는 임도완 특유의 집단적 문법을 끊임없이 조율하는 작업이다. 두 작품은 지금의 임도완이 어디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천시립극단 제공]
작품 '니들 인천'은 인천의 역사와 생활사를 하나의 장대한 서사로 밀어붙이기보다, 짜장면과 사이다, 성냥공장, 인천상륙작전과 항구 도시의 기억 같은 서로 다른 소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 보였다. 임도완은 이 작품을 "역사를 알아가는 패키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니들 인천'은 인천을 하나의 이미지나 정체성으로 요약하는 작품이라기보다, 시민들조차 익숙하게 여겼던 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한 발 떨어져 다시 보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임도완이 인천이라는 지역과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 데 있었다. 공공극단이 지역의 소재를 다룰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홍보와 계몽의 어조다. 특정 도시에 대한 애정이 과잉되면, 연극은 긴장을 잃고 대상은 단순한 표상으로 축소된다. 임도완은 그 위험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인천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곳이에요. 인천이 국내 최초였던 것이 얼마나 많은 곳인지, 저도 여기 와서 인천을 조사해 가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이런 것들이 단순한 찬양이나 예찬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한계점을 설정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는 지역 내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록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전문가의 인터뷰를 장면에 삽입하기도 했다. 이는 인천을 내부자의 향수로 소비하지 않고, 외부자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바르게 읽어내려는 의도였다. 특히 인천의 성냥공장 이야기는 지나쳐버리기 쉬운 생활사의 한 장면을 여성 인권 운동의 중요한 역사와 사건 안에서 구성함으로써 가려져 있던 의미의 층위를 복원하는 장면이 됐다.
"피나바우쉬는 부퍼탈이라는 독일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고 자랑의 대상이었어요. 저는 인천시립극단도 지역을 바꿀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역성이 세계성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저는 가벼운 오리엔탈리즘이 자칫 '쇼잉'에 그칠 위험도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첵'이나 '십이야'도 애초부터 해외를 겨냥한 작품이 아니었어요. 만들고 보니, 해외에서 보기가 좋은 작품이 된 거죠. 지역에서 작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지역을 예쁘게 포장하고 홍보하는 쪽으로 기울면, 작품은 금세 설득력을 잃게 되죠. 저는 그저 인천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임도완은 공공의 역할을 그저 좋은 메시지를 보기 좋게 전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지역을 드러내되 소비적인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한국적인 것을 다루되 외부의 시선에 맞춘 이벤트로 머물지 않도록, 그는 리듬과 속도, 장면의 구조를 먼저 고민한다.
◇ 도시를 읽는 법
그의 첫 번째 관문은 시립극단 배우들이었다. 지역 안에서 오랫동안 일정한 정서와 형식을 유지해 온 단원들을 그의 문법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긴 설득의 과정이기도 했다. 배우의 신체를 어떻게 열 것인가, 극단의 호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 변화가 관객과는 어떻게 만날 것인가.
실제로 인천시립극단 배우들은 이번 작업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몸의 속도와 리듬을 보여주었다. 사실적인 연기에 익숙한 배우는 훈련된 몸짓과 빠른 속도감으로 전과는 다른 인상을 만들어냈다. 임도완은 이런 변화가 한 작품 안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맞추는 데만 6~7년이 걸렸어요. 시립극단이라고 해서 그 변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공공극단과 소속 배우는 지역과 시민에게 책임이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훈련과 더 정교한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공공성을 착한 메시지나 무난한 소재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공공은 기준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을 더 예민하게 열어주는 일이다. 공연을 통해 지역 관객의 감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공공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앞으로 인천시립극단에서 임도완의 작품을 만나게 될 관객은, 이전보다 더 능동적인 집중과 참여를 요구받을 수 있다.
"시립극단 배우만의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인천 시민이 연극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극장을 찾아주셔야 해요. 관객이 극장에 와서 열심히 공연을 보고 작품을 만나야 극단과 극장, 시민이 함께 업그레이드되는 겁니다."
실제로 '니들 인천'은 시립극단 배우의 몸짓만으로도 지역의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도시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관객에게 다른 차원의 인식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지역극이 해당 지역의 시민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하나의 사례가 됐다.
임도완은 현재 자신만의 문법이 공공의 무대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점에 대학로 무대에 오른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감찰관'은 재공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공공극단의 예술감독이 된 뒤에도, 어쩌면 더 큰 갈증 속에서, 그는 안전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형식과 감각을 부단히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나라에서 제게 예산을 주신다면, 봉산탈춤의 12장을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꼬메디아 델 아르떼와 같은 반가면을 가죽으로 만들고, 사투리도 넣어서요. 봉산탈춤에는 부동점이 없이 물 흐르듯 흐르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정지가 들어간다면, 달라질 겁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우리에게도 어쩌면 오래된 가면의 역사가 이어졌을 거예요. 우리가 가진 것들이 이미 얼마나 많은지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임도완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연극의 새로운 조건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관객과의 접점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전을 박제된 원형으로 다루지 않고, 오늘의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리듬과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그의 독창적인 작업은 고전의 매력을 보존이 아니라 갱신의 차원에서 만나게 해준다. 11월에 예정된 인천시립극단의 신작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연(禪蓮) 김수미. 연극 평론가
▲ 전 월간 '객석' 연극전문 기자. 현 중랑문화재단 문화정책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