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권리 보호를 위해 신청한 임차권등기가 집주인 측 법무사의 해제 신청으로 말소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의 본인확인 체계와 전자문서 관련 형법 적용의 공백 문제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2021년 전세보증금 1억4천800만 원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계약이 종료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 전액을 지급받았습니다.
A씨는 보증금을 수령한 뒤에도 세입자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법원에 임차권등기를 신청했습니다. 임차권등기는 세입자가 주택을 비운 이후에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얼마 뒤 A씨는 황당한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HUG 담당자로부터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A씨는 스스로 말소를 신청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법원 기록을 확인한 결과, 전자소송 시스템에는 A씨 명의의 '임차권등기명령 해제신청서'와 제출위임장이 접수돼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집주인 측 법무사가 A씨의 도장 이미지를 위조해 신청서를 작성한 뒤 전자소송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임차권등기 말소를 신청한 것이었습니다. A씨는 해당 신청을 직접 하거나 위임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입니다.
설상가상으로 HUG는 A씨에게 이미 지급한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까지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현행 전자소송 시스템의 본인확인 구조입니다.
현재 전자소송 시스템에서는 임차권등기 해제 신청 과정에서 실제 임차인 본인이 직접 전자서명을 해야 하는 절차가 별도로 강제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신청 서류를 업로드한 제출자인 법무사나 변호사가 본인의 공동인증서로 전자서명을 하면 접수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신청서 파일에 도장 이미지를 삽입한 뒤 전자소송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해제 신청이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다만 검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두 차례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습니다. 전자소송 시스템에 업로드된 전자파일 자체는 현행 판례상 형법상 '문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종이 문서를 위조할 경우 사문서위조죄 적용이 가능하지만, 전자파일 형태는 현행 형법 체계에서 처벌이 쉽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전자소송 이용이 확대되는 가운데, 임차권등기 말소처럼 세입자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청에 대해서는 임차인 본인의 직접 인증을 의무화하는 등 본인확인 체계와 전자문서 관련 법적 안전장치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