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빚은 조각, 연기로 그린 회화’ 문민순 작가

문민순 작가
문민순 작가

가마 내부의 뜨거운 어둠 속, 톱밥이 타들어 가며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단단한 흙의 숨구멍 사이로 깊숙이 침투한다. 이른바 연기소성법이다. 불과 연기가 제멋대로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예측 불가능한 먹빛과 회색의 그라데이션이 차오른다.

영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민순의 개인전 ‘사라짐 너머의 : 스며든 흔적’은 이처럼 인위적인 가공을 걷어낸 자리에 남겨진 ‘시간의 퇴적’을 마주하는 자리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30여 년간 흙과 불, 그리고 연기의 상관관계를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도자라는 전통적 매체를 조소와 회화, 나아가 설치미술의 영역으로 멋지게 확장해 놓았다.

문민순의 작업은 웰메이드 공예품이 주는 매끄러운 완벽함을 거부한다. 전시장 곳곳에 우뚝 솟은 기둥과 길쭉한 수직 구조물들은 작가가 열네 살 무렵 서울에서 처음 마주했던 콘크리트 건물에 대한 기억(보호와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각)에서 출발했다. 흙이 가진 원초적인 무게감과 조각적 볼륨감은 그 자체로 단단한 조소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입체물들을 덮고 있는 표면은 지극히 회화적이다. 연기소성(Smoke-firing)을 통해 완성된 검은 그을음과 얼룩은 칠해진 색이 아니다. 물질 자체가 불을 통과하며 들이마신 ‘사건의 흔적’이자 붓질을 대체한 연기의 추상화다. 동양 수묵의 은은한 발묵(發墨)을 닮은 이 먹빛의 층위들은 매끄러운 기하학적 구조물에 시간의 깊이와 흔적을 새겨 넣는다.

이번 전시가 주는 가장 큰 미학적 충격은 각각의 오브제들이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맺는 관계성에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시장 내부에는 시각적인 음율과 여백이 가득하다.

작가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을 의도적으로 넓게 배치했다. 먹빛 표면이 주변의 빛을 흡수하며 만들어내는 어둠의 밀도는 전시장 전체를 순식간에 명상적인 장소로 변환시킨다. 비어 있는 공간의 틈새로 관람객의 나지막한 숨소리와 발소리가 채워진다. 이처럼 작품은 끊임없이 호흡하는 하나의 총체적인 설치미술이 된다.

전시의 정점은 도자의 물성을 한지 위의 피그먼트 프린트라는 평면 매체로 치환한 대표작 ‘숨 쉬는 그림자’ 연작이다. 먹물이 은은하게 스며든 듯한 연기소성 달항아리 작품을 사진으로 포착해 한지 위에 인쇄한 이 작업은 가시적인 사물 너머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전통 한지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온전히 머금는 성질이 있다. 화면 속에서 항아리의 완만한 곡선은 흙이라는 덩어리를 벗겨내고 아스라한 실루엣으로 존재한다. 상단의 백색광과 하단의 짙은 묵색이 만나는 경계는 안개처럼 흐릿하며,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기서 그림자는 빛의 차단으로 생겨난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스스로 숨을 쉬며 내면의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주체가 된다. 눈으로 보기보다 몸의 지각으로 느끼게 되는 촉각적 장(場)이 평면 위에서 완성된 것이다.

"어려서 보았던 까맣게 그을린 아궁이의 연기 흔적은 늘 저를 상상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구들방 밑에 검은색 작은 요정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작가의 이 고백처럼, 가마 안에서 연기를 뿜어내던 톱밥은 재가 되어 완전히 소멸했지만 그 흔적은 기물의 살결 속에 영속적인 증거로 남았다. 마치 요정처럼.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대로 '부재를 통해 현존하는 흔적의 미학'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문민순의 작업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흔적을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라는 깊은 사유를 권한다. 형태를 비워내고 묵묵한 먹빛으로 수렴된 작품들 앞에서 관람객은 상실이나 부재가 아닌, 사라진 것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스며들어 숨 쉬고 있다는 영속적인 잔향을 언어가 아닌 온몸의 감각으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전시는 2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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