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행사에서 현대자동차 고위 임원이 공식 석상에서 탄식하며 한 말이다. 파리모터쇼에서 마주한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경쟁력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췄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말은 더욱 뼈아팠다. 한국 자동차 브랜드 역시 결국 중국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의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올해 휴가차 방문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현대차와 기아뿐 아니라 중국 브랜드 차량도 쉽게 눈에 띄었다. BYD와 체리자동차 등의 대형 전시장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현지 생산기지까지 구축한 시장이다. 그곳에서도 중국차의 공세는 거셌다.
중국 상하이에서의 경험도 떠올랐다.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으로 부른 차량은 모두 중국산 전기차였는데, 실내 디자인과 승차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중국차는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차의 성장은 이미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올해 3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 부진과 구조조정 비용 등이 겹친 결과다. 최대 10만명 감원 계획까지 내놨다.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도 경쟁에서 밀리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현대차와 기아도 이 같은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면 판매량 회복은 요원하다. 이미 중국 업체들이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완성차 시장을 빼앗기면 충격은 협력 부품업체로 번진다. 국내 생산과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아쉽다.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고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 적용 대상에서 전기차가 빠졌다. 업계가 국내 전기차 생산 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소비자 구매 보조금만으로는 중국과의 생산비용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
물론 기업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가격을 낮추고 기술력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 차원의 산업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여야 의원들이 국내 전기차 생산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하며 뒤늦게라도 대응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국내 생산을 늘리고 부품업계의 경쟁력을 높일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자동차 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쟁력을 지키는 일은 특정 기업을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협력업체와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차의 공세 앞에서 더는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K자동차를 지킬 시간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