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가른 55세 친구의 엇갈린 노후…국민연금의 낡은 구조

여성 가사노동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여성으로 올해 55세가 된 동갑내기 친구 A씨와 B씨가 노후가 불안해 나란히 국민연금공단 지사 상담 창구를 찾았다.

2명 모두 평생 국민연금 보험료를 한 번도 낸 적이 없고 현재 소득도 없다.

그런데 상담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혼인 B씨는 과거 기간을 소급해 보험료를 내는 추후납부(추납) 제도를 통해 연금 수급권을 얻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해 평생 살림과 육아를 도맡은 전업주부 A씨는 추후납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똑같이 소득이 없었는데 왜 결혼 여부가 노후의 운명을 갈랐을까.

그 이유는 1988년 제정된 국민연금법의 낡은 설계도에 숨어 있다.

제도 출범 당시에는 가입자의 소득대체율이 70%에 달했고, 남성 외벌이 가장이 연금을 타면 배우자의 노후까지 부양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1가구 1연금' 구조로 틀을 짰다.

하지만 이후 재정 안정을 이유로 소득대체율이 단계적으로 인하되면서 남편 1명의 연금만으로는 부부 2명의 노후를 버티기 불가능해졌다.

시대는 이미 '1인 1연금' 체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역가입 제도는 여전히 38년 전의 가구 단위 껍질에 갇혀 기혼 무소득 배우자를 '적용제외자'라는 이름의 투명인간으로 취급해 온 것이다.

◇ 남성의 절반 수준인 여성 연금…출산 크레딧 혜택도 남편 차지

22일 국민연금공단 통계를 보면 이 구조적 모순이 낳은 성별 노후 격차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5년 12월 기준 노령연금(수급연령에 도달했을 때 받는 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1인당 평균 수령액은 남성이 월 85만1천670원이지만 여성은 절반 수준인 월 42만9천206원에 그쳤다.

수급 금액 구간별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여성 노령연금 수급자 가운데 월 40만원 미만을 받는 저연금자가 167만2천182명으로 남성 108만2천480명보다 약 59만명이나 많다.

반대로 월 100만원 이상을 받는 수급자는 남성이 97만9천946명에 달하지만 여성은 5만3천244명에 불과하고, 월 200만원 이상 수급자는 남성 9만1천365명 대비 여성은 고작 1천964명뿐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출산 크레딧 통계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겠다며 둘째 자녀 이상 출산 시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주는 출산 크레딧의 2008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수급자 1만233명 가운데 남성이 9천957명으로 97.3%를 차지했고, 정작 아이를 낳고 키우며 경력이 단절된 여성 수급자는 276명으로 2.7%에 머물렀다.

2025년 한 해 동안에도 전체 수급자 9천999명 중 남성이 9천727명, 여성이 272명이었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 직후 적용제외자로 밀려나 최소 가입기간 120개월을 채우지 못하거나, 가입기간이 길고 소득이 높은 남편의 연금에 크레딧을 몰아주는 것이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구조 탓에 모성 보호 제도의 혜택마저 남성 가입자 명의의 연금으로 흡수되고 있다.

여성들의 각자도생은 가입 유형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말 기준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2천181만4천633명의 평균 납부기간은 남성이 152개월이지만 여성은 123개월로 29개월이나 짧다.

특히 지역가입자 중 소득신고 여성의 평균 납부기간은 116개월, 납부예외 여성은 50개월로 연금 수령 최소 기준인 120개월에 미달한다.

이 때문에 법적 의무가 없는데도 스스로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임의가입자 33만3천717명 중 여성은 26만8천113명으로 남성 6만5천604명의 4배가 넘는다.

60세가 넘어서도 부족한 가입기간을 채우기 위해 보험료를 계속 내는 임의계속가입자 45만4천886명 가운데서도 여성이 31만4천173명으로 남성 14만713명의 2.2배에 달한다.

제도가 밀어낸 자리에서 여성들이 사투를 벌이며 연금 수급권을 건져 올리고 있는 셈이다.

◇ '재테크 악용' 차단하고 실질 지원 결합해야…'1인 1연금' 과제

물론 무소득 배우자 등 667만명을 일괄적으로 지역가입자 납부예외자로 편입하고 추후납부 문을 넓히는 개편안에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소득 가구의 전업주부들이 노후 직전에 목돈으로 최대 119개월치 보험료를 일시 추후납부해 높은 수익비의 연금을 타 가는 역진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강남권 등을 중심으로 추후납부가 부유층의 연금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추납 한도를 10년 미만으로 제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입구조 개편이 진정한 보편적 노후 안전망으로 자리 잡으려면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적 적용 제외 규정을 폐지해 18세 이상∼59세 이하 모든 국민을 개인 단위 가입자로 편입하되, 추후납부 시점의 기준소득월액 산정 기준과 분할납부 지원 장치를 정밀하게 다듬어 고소득층 편중 논란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가입 자격만 열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저소득 가구의 무소득 배우자가 실질적으로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과 출산 및 돌봄 크레딧의 사전 부여 방식을 결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시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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