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오션플랜트가 경남 고성 조선소에서 3600톤급 최신예 호위함 ‘경북함’을 해군에 조기 인도하며 특수선 건조 역량을 입증했다. 대형 전투함 건조 경험이 부족하다는 수주 초기의 우려를 해소한 성과다.
그러나 방산업계와 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방산 특수선 생태계의 과당 경쟁과 수익성 악화에 대한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가성비 중심의 수주 구조가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북함 건조 과정에는 여러 시장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다.
지난 2021년과 2022년, SK오션플랜트(당시 삼강엠앤티)는 울산급 Batch-III 호위함 후속함 입찰에서 방위사업청이 제시한 예정 가격 8059억원 대비 약 1000억원 이상 낮은 7051억원에 사업을 낙찰받았다.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대형 조선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막대한 비용과 기술력을 들여 군함의 설계 뼈대(선도함)를 완성해 놓았더니, 정작 실제 배를 짓는 후속 사업에서는 가격 경쟁력만을 무기로 한 중견 조선소가 물량을 독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설상가상으로 계약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배의 주재료인 철강(후판)과 핵심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고, 조선업계 전반의 인력난까지 겹쳤다.
업계에서는 중견 조선소의 체급과 예산으로는 약속된 납기(공기)를 맞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이 많았다.
24일 해양·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경북함(2번함)의 조기 인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SK오션플랜트는 이를 기점으로 남은 후속함인 3번함(전남함)과 4번함(제주함) 건조에서도 초고속 릴레이 공정전략을 본격 전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소 현장의 인력 운용을 최적화해 공장 가동 효율을 극대화하는 한편, 상선 및 대형 해양구조물을 만들며 쌓아온 블록 조립 노하우를 군함 건조에 결합해 작업 기간을 단축해 나갈 방침이다.
SK오션플랜트가 속도전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대형 조선사들과 대비되는 중견 조선소 특유의 제한된 생산 공간(야드)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실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대형 도크를 여러 개 운용하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사와 달리 SK오션플랜트는 경남 고성 조선소 단 한 곳만을 자체 생산 기지로 운용하고 있어, 한정된 도크 안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를 겪고 있다.
이러한 신속함은 해외 MRO(유지·보수·정비) 시장 진출에서도 핵심 무기가 될 전망이다.
회사가 지난 2월 미국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한 이후 본격적인 수주 경쟁이 예고된 만큼, 압도적인 정비 속도를 입증해야만 대형사들 사이에서 확실한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해군 역시 이번에 호위함 능력을 증명한 SK오션플랜트의 행보와 한국 내 경쟁 구도를 실리적 차원에서 주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함 정비 정체 문제를 겪고 있는 미 해군 입장에서는, 대형 수상함을 조기에 완공할 만큼 공정 관리 역량이 검증된 SK오션플랜트의 고성 조선소가 새로운 정비 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다만 국내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 구도가 형성됨에 따라 결국 미 해군의 가격 협상력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짙어지는 분위기다.
국내 특수선 시장의 과당 경쟁은 심화되는 양상이다.
과거 군사기밀 유출에 따른 보안 감점 논란과 입찰 결과를 둘러싼 법적 소송 등이 겹치면서, 대형 조선사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된 바 있다.
가격 경쟁의 여파는 국내 조선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한 미국 해군 함정 MRO 시장으로도 전이되는 추세다.
국내 업체들이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 자격을 연이어 취득하며 수주전에 참여하기 시작한 가운데, 초기 한화오션의 물량 확보로 활력을 띤 시장에 HD현대중공업과 SK오션플랜트가 동시 가세하면서 국내 업체 간 단가 인하 경쟁이 발생했고, 이에 정비 단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경북함 인도식 이후 실제 군 전력화 단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상존한다.
향후 6개월간 실전 훈련과 해상 검증을 거치게 되는데, 거친 해상 환경에서 국산 핵심 전투체계 및 하이브리드 추진 기관이 오차 없이 작동하는지 현역 승조원들의 운용을 통해 최종 검증해야 한다고 한다.
SK오션플랜트는 남은 전남함(3번함)과 제주함(4번함)을 연이어 건조하면서 투입되는 비용을 안정적으로 순환시키고 현장 인력들의 누적된 피로도를 관리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SK오션플랜트가 3·4번함 건조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시기는 한화오션이 수주한 마지막 물량인 5번함(내년 12월 인도 예정)과 6번함(2028년 6월 인도 예정)의 건조 일정과 맞물려 있다.
과도한 최저가 경쟁이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경우, 특정 기업의 차원을 넘어 한국 방산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국내 해양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인도가 무난히 이루어진 점은 다행이지만, 과도한 저가 경쟁이 고착화되면 하도급 구조상 부품 단가 압박 등으로 이어져 품질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밀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대형사들이 단가 경쟁에 치여 수주에서 계속 고배를 마신다면 연구개발 투자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중견사의 성과 보상과 대형사의 기술 투자 의지 고취 사이에서 제도권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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