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무대에 오른 11명이 힘찬 외침과 함께 극을 시작한다. 배우는 7명이다. “나 임지윤, 양손 모두 네개 손가락, 팔과 머리도 짧아.” “나 김범진, 작은 체구를 갖고 있지만 무대에선 누구보다 더 큰 존재감 갖고 있어.” “난 하지성, 내가 배우 할 상인가? 저 아시죠, 백상연기대상 탄 사람이다.” 손이 굽고(임지윤), 저신장증을 앓았고(김범진), 휠체어를 탄 몸(하지성)이지만 거리낌없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대사로 녹여낸다. 배우 옆엔 전담 수어통역사 4명이 밀착한다. 이들도 배우인 듯 연기와 동작, 표정까지 전달한다.
지난 1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 셰익스피어 원작 연극 ‘당신 좋을 대로’ 시연 현장이다. 극 초반은 원작대로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하더니, 휠체어 탄 올랜도(하지성)가 선수(임지윤)와 경주를 펼치는 장면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유머 코드를 뒤섞는다. “남산을 지나 인천대교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 인천 앞바다에서 사이다를 마시고 있습니다.” “아, 올랜도, 휠체어 충전기가 다 됐어요. 충전하려면 5시간 걸리는데, 여유를 부리며 고량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는 국립극장 무장애 공연 중 첫 희극 작품으로, 무장애 공연의 지평을 넓히려는 도전이다. 국립극장은 2021년부터 무장애 공연을 여럿 선보였는데, 모두 장애 당사자를 중심에 둔 진지한 주제 또는 공익적 담론 중심의 정극이었다. 장애를 웃음거리로 삼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 장애인 배우 작품을 마음 놓고 웃으며 즐길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 좋을 대로’는 원작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장애·비장애인 배우 각자 신체적 특성에 맞춘 표현 방식을 살린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냈다. 박지혜 연출은 “그동안 배리어프리(무장애) 공연에선 비극이 많았는데, 그런 작품들은 연습실 분위기도 어둡고 무겁다. 모든 인간은 비극과 희극을 모두 갖고 있는데, 내 안에 어떤 편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장애 공연에서 덜 조명된 고전 희극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배우들도 서로 이해하고 성장하는 무대다. 출연 배우 7명 가운데 5명은 장애인, 2명은 비장애인이다. 이들은 1인 다역으로 20여명의 등장인물을 소화한다. 아담·자크·실비우스 역을 맡은 이성수는 “무장애 공연을 하면서도 시각장애인이라 늘 소외되고 배제되는 상황을 경험했기에 이번엔 시작부터 ‘나를 소외시키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데 배우들이 서로 배려하고 작품도 유쾌해, 우려했던 일 없이 놀이하듯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주인공 올랜도 역의 하지성은 “작품 주제인 사랑에는 연인뿐 아니라 형제, 이웃 등 다양한 관계의 사랑이 담겨 있다”며 “이런 만남 자체가 사랑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배우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았다.

국립극장은 창작에 앞서 제작진과 출연진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개선 교육과 신체 워크숍을 진행했다. 각 배우의 신체 상태와 속도, 유머 방식을 공유했다. 박지혜 연출은 “원작에 풍자·조롱이 많은데 혐오가 있는 건 배제했다. 희극을 할 때는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훨씬 (사람이) 열리고 즉흥적 감각이 나오지 않나. ‘웃어도 되나’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연극, 정말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연극을 만들겠다”고 했다. 오는 28~3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