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건 지루해"...못생긴 것들이 점령한 세상 [이슈크래커]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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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건 지루해, 차라리 웃길래!"

요즘 거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패션이 가득합니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옷차림 아래에 투박한 통굽 고무신을 신거나, 번듯한 가방에 애매하게 생긴(?) 인형을 달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바야흐로 'B급 감성''어색함'이 힙함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한때는 워스트 드레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못생긴 디자인'들이 어떻게 2026년 현재 전 세계 소비 트렌드를 점령하게 됐을까요.

패션계를 강타한 '프랑켄슈'의 반란

▲메종 마르지엘라 타비(Tabi) 뉴 발레리나 플랫 슈즈. (사진제공=메종 마르지엘라)
▲메종 마르지엘라 타비(Tabi) 뉴 발레리나 플랫 슈즈. (사진제공=메종 마르지엘라)

최근 글로벌 패션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발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아주 묘한데요.

B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패션 피플들의 발끝을 차지한 신발은 이름조차 생소한 '하이브리드 슈즈'들입니다. 스니커즈와 로퍼를 기괴하게 합쳐놓아 패션 전문지로부터 신발업계의 스포크라는 평을 들은 '스노퍼(Snoafer)'는 현재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죠.

실제로 리셀 플랫폼 스톡엑스(StockX)에 따르면 뉴발란스의 스노퍼 모델은 출시 이후 1만3000 켤레 이상이 팔려나갔고, 스니커즈와 메리제인을 매치한 독특한 운동화는 올해 1분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350%나 급증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발가락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5핑거 러닝화나 메종 마르지엘라의 '타비(Tabi)' 슈즈처럼 여러 실루엣이 괴상하게 섞인 '프랑켄슈즈(Frankenshoe)'들이 예전의 난해하다는 오명을 벗고 가장 트렌디한 인싸템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완벽한 건 AI나 줘라!" 피로감이 만든 B급 감성

(AI 기반 편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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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상하고', '못생긴 것들'에 열광하는 걸까요?

트렌드 분석가들은 이 현상의 이면에 완벽함에 대한 피로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합니다.

우리는 지금 SNS를 켜면 AI가 그려낸 듯한 완벽한 얼굴과 몸매, 알고리즘이 짜 맞춘 매끄러운 콘텐츠가 넘쳐나는 무결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그 완벽함에서 지루함과 가짜 같은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패션 매체 전문가들은 이러한 못생긴 신발들이 일종의 '안티 퍼펙션(Anti-perfection, 반완벽주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설명합니다.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정장 수트 아래에 뭉툭하고 투박한 크록스나 흙빛의 원예용 클로그를 믹스매치하는 스타일링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나는 세련되려고 애쓰지 않아"라는 심리를 은근히 과시하며, 너무 정교해서 숨 막히는 세상에 날리는 유쾌한 '어퍼컷'이자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식을 취하는 셈입니다.

공항에서 벌어지는 탈압박 챌린지, "누가 더 민망한가"

▲'못생긴 티셔츠 교환 챌린지'에서 받은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 학생들의 모습. (출처='eveii' 유튜브 채널 캡처)
▲'못생긴 티셔츠 교환 챌린지'에서 받은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 학생들의 모습. (출처='eveii' 유튜브 채널 캡처)

이러한 트렌드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Z세대들의 '공항 못생긴 티셔츠 교환(Ugly Shirt Exchange) 챌린지'를 보면 그 흐름이 아주 명확히 보입니다.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기 전 서로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부끄러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주문해 선물하는 문화인데요. 룰은 간단하게도 공항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은 뒤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벗지 않는 것입니다.

'나 오늘 배탈 났어'라는 문구나 '가슴털이 수두룩한 그래픽' 등 쳐다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티셔츠를 입고 당당하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영상들이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멋지고 예쁜 사진을 찍어 올리던 과거의 여행 인증샷과 달리 이제는 누가 더 많은 사람을 멈춰 세우고 빵 터지게 만드느냐가 강력한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내가 하남자라니!" 한국을 뒤흔든 '웃긴 티셔츠'의 세계

▲하남자/하여자 티셔츠. (사진제공=얼렁뚱땅 상점)
▲하남자/하여자 티셔츠. (사진제공=얼렁뚱땅 상점)

이쯤 되면 우리나라 얘기도 해봐야겠죠.

네, 못생기고 웃긴 것에 진심인 트렌드는 이미 한국 소비 시장에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 생태계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크리에이터 승헌쓰의 '컨디션 난조 티셔츠'나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 침착맨의 '하남자 티셔츠'가 이를 증명합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잠옷으로나 입던 개그 티셔츠들이 이제는 당당한 외출복이자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국내 최대 모바일 커머스인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패션과 의류 상단 카테고리를 보면 킹받는 문구 티셔츠나 B급 프린팅 굿즈들이 당당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생일날 명품 향수 대신 유쾌한 추억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 것이죠.

예뻐 보이기 위해 발가락을 구겨 넣던 뾰족한 구두와 숨을 참아야 했던 타이트한 옷에서 벗어나 대중들은 못생김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예쁜 것들이 넘쳐나 피로한 세상 속에서 하루쯤은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조금 어설프고 기발한 아이템으로 나만의 유쾌한 멋을 뽐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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