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운영 계획은 보통 5년 단위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국가 정책의 방향을 약속하고 결과를 평가받기에 적합한 시간 단위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나 의회 임기가 4~5년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관행이다. 지나간 시절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35년간 7차까지 이어지면서 오늘날 한국 경제의 기본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나 인구 감소, 고령화, 기후 위기 같은 거대한 문제들은 5년 안에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는 연금 제도, 도시 계획, 탄소 중립 등은 한 세대 이상의 긴 안목으로 설계해야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당면한 상황을 처리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5년 계획은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술, 20년 이상의 계획은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의 헨더슨연구소가 20년 이상에 걸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데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네 가지 변수가 끼칠 세계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 ‘2050년 세계 4가지 시나리오’(Beyond Tomorrow: Four Scenarios for the World of 2050)를 발표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4가지 시나리오의 핵심축은 인공지능(AI), 지정학 갈등, 기후 변화, 빅테크 기업이다. 앞으로 5년간 이 네가지 동력이 어떤 흐름을 보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21세기 중반의 지구촌 모습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이 크고 작은 것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네 가지 시나리오는 100여가지 메가트렌드와 지난 100년의 데이터 분석, 거시경제부터 우주공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풍요, 대결, 연합, 적자생존의 네 가지 얼굴
보고서가 제시한 시나리오들은 실현 가능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각 시나리오의 전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는 풍요의 세상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전망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다. 업무 자동화로 사람들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보고서는 기술 발전이 이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세계 GDP는 2050년까지 3배 증가하고 평균 노동 시간은 현재 2100시간에서 1600시간으로 2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특히 사람을 쓰지 않고 에이전트 인공지능만을 사용하는 기업의 부상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과 중국 같은 지정학적 갈등이 이어진다면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주요 강대국과 그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로 구성된 블록들 간의 대결 세상이다. 초강대국이 사라지고 다극화된 세계에서 몇개의 세력권이 형성되면서 전 세계 무역은 줄어들고, 각국의 국방비는 늘어난다. 보고서는 전 세계 GDP와 비교한 국제무역 비중은 현재 57%에서 냉전시대 수준인 35%로 낮아지고 전 세계 국방비는 2.4%에서 7%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문제도 갈등의 장이 되어 전 지구적 탈탄소화보다는 지역적 적응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은 정체되고 불안은 증폭돼 인류의 행복 지수가 10%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세계 공통의 기후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연합 세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상 현상이 잇따르면서 세계 각국은 성장보다 회복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탄소 배출 기준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보고서는 이 경우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의 81%에서 35%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한편에선 의료 및 생명공학 발전으로 전 세계 평균 건강 수명이 68살로 지금보다 5년 늘어난다.
넷째는 무한 기술 경쟁이 부르는 적자생존 세상이다. 국가마다 선도적인 기술 기업을 유치하려는 경쟁으로 규제의 벽이 무너진다. 이는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소수 거대 기업의 영향력을 극대화해 부의 편중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실적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달라지고, 이들 기업의 성과급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는 한국경제의 현실은 그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양극화된 세상에선 민주적 가치도 훼손돼 민주주의 국가 비중이 현재 49%에서 30%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흐름을 뒤바꿀 블랙스완 사건은?
보고서가 제시한 시나리오들은 현재 시점에서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것을 선별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예상보다 다양한 변수들이 얽히고설키면서 훨씬 복잡하게 전개되기 마련이다. 특히 발생 확률은 낮지만 파급 효과는 엄청난 '블랙 스완'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회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보고서는 범용 인공지능이라는 특이점의 출현(인공지능 풍요의 세상), 인공위성 시스템 파괴로 대별되는 우주전쟁(지정학적 대결 세상), 핵융합의 실용화(기후 위기 연합 세상),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대중화(디지털 적자생존 세상)를 블랙스완 사건의 한 사례로 꼽았다.
보고서는 “이 시나리오들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미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도구”라며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고려하면 미래의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회복력을 높이고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조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 정보
https://www.bcg.com/publications/2026/beyond-tomorrow-four-scenarios-for-the-world-of-2050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