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할 땐 없었던 규제' 회수길 막힌 韓 자본시장 [노트북 너머]

“한국 시장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들어갈 때 없던 규제가 나갈 때 생기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해지죠.”

최근 만난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일반주주 보호 강화나 중복상장 규제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했다. 기업이 성장한 뒤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상장시켜 기존 주주 권익을 훼손하는 구조는 개선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규제의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다. 투자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규제가 엑시트(회수) 단계에서 등장하면 투자자는 한국 시장 전체를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일반주주 보호와 시장 질서 강화를 목적으로 제도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가 대표적이다.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 권익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기업공개(IPO) 심사 기준도 한층 엄격해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플랫폼·대기업집단 규제, 상법 개정 논의까지 맞물렸다. 각각의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딜(거래) 과정에서 어떤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 추가될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규제 변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렌탈 매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도 이러한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롯데그룹과 사모펀드 운용사(PE)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 거래는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변수에 부딪히며 결국 무산됐다. 롯데그룹은 국내 렌터카 1위 업체인 롯데렌탈 매각 작업의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새롭게 등장할 인수자 입장에서도 거래 이후 사업 재편 가능성과 회수 전략을 다시 따져볼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거래의 성패 그 자체가 아니다.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진입할 때 규제 리스크를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냐는 '신뢰의 문제'다.

이는 해외 자본 유치와도 직결된다. 한국이 달러를 끌어오려면 수출 실적이나 공장 설립, 직접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사모펀드운용사(PE), 연기금 등 장기 자금의 유치가 필수적인데, 이들은 투자 대상의 성장성만큼이나 회수 경로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본다. 결국 투자 유치의 핵심은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고, 출구가 막히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까지 줘야 한다.

일본 시장으로 최근 글로벌 자금이 향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기업들의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친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룰이 작동한다는 신뢰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증시 활성화와 거버넌스 개선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자본시장은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일관된 실행이 중요하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규제라도 제도의 안정성을 흔든다면 자본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시장은 소액주주 보호와 해외 자본 유치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해외 자본은 한국 시장의 성장성을 확인하기에 앞서, '이 시장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룰이 같은 시장인지'를 먼저 묻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규제의 당위성을 넘어,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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